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홍보

꿈과 열정으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다
  • 년도2018
  • 기관명전남강진지역자활센터
  • 제출자서명선
  • 조회수1,011

화려한 직장 생활과 결혼으로 아들을 낳다

   1988년 19세의 어린 나이에 상고 졸업 후 평생직장이라고 부러워하는 증권회사에 취직했고 야간 대학에 입학해 그야말로 주경야독하며 희망만을 품은 채 앞만 보고 달렸다. 이후에 대학에서 만난 아내와 1997년 결혼해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IMF라는 복병을 만나 경기 침체와 구조조정 등으로 억대 연봉을 받았던 내가 생계를 염려해야 하는 등 직장생활 10년 만에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지독한 머피의 법칙이라는 늪에 빠지다

   2001년 둘째 딸 아이가 태어나 생활비가 가중되는 시기에 고액의 보증 채무와 주식투자 실패로 급여압류가 시작되자 아내와 나는 자주 다투게 되었고 결국 이혼을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정신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여 2003년 10월 입사 15년 만에 희망퇴직을 하였다. 아파트를 처분하고 퇴직금으로 보증채무 일부를 상환하고 나니 현금 30만 원과 1억 원의 부채만이 남았다.

   

  큰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3살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부자가정의 비참한 현실이 실감 났다.

매사에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살자!

 

   겨우 마련한 원룸에서 아이들을 홀로 부양하며 취직을 하려 했지만 신용 불량자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낸 후 치킨과 만두 배달을 하였고, 야간에는 대리운전 등을 했다. 쉴 새 없이 1년 6개월을 일해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엄마 없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한 없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하는 수 없이 모든 걸 내려놓고 아내를 설득해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다시 합쳤고, 처갓집 작은방에서 처가살이를 하면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다

   처가살이로 생활비를 절약해 알뜰하게 저축을 했다. 식당을 할 수 있는 사업자금을 마련하였고 전남 해남에 있는 민물장어 전문식당을 인수하여 2005년 5월 개업을 했다. 낯선 곳이었지만 처음은 순탄했다.

 

   그러나 개업 2개월쯤 되던 2005년 6월 중순 경, 1급 발암물질인 말라카이트그린이 검출된 중국산 장어가 유통된다는 언론 보도로 국내산 장어 사업도 된서리를 맞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으리라 긍정적인 사고로 은행대출까지 받아 식당 운영을 계속 했다. 다행히 매출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여 더 이상 큰 악재는 없을 거라 확신했으나 원재료 가격 급등으로 마진율이 하락하여 팔면 팔수록 적자가 발생했다.

    

 

내 고향 강진군으로 귀촌을 결정하다

   정말 힘든 와중에 아내는 셋째를 임신했고 식당을 매각하기로 했지만 불경기라 매각도 어려웠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 멀리 포항에 있는 공사 현장에 1년간 일용직으로 취업했었지만 셋째 아이 출산 등으로 생활고가 더욱 가중되었고 자립은 아주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우연히 뉴스에서 셋째 아이 출산 장려 정책으로 1천만 원을 준다는 전남 강진군에 대한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강진군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의 따뜻하고 친절한 상담으로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복지정책이 우리 가족의 행복한 울타리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 강진읍에 거주 중인 형님으로부터 방 한 칸을 무상임대 받아 셋째 아이 출생 신고를 한 후 강진군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에게 일자리 알선을 부탁했다.

    

 

지독한 머피의 법칙 늪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하다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강진군청 청년 행정인턴으로 월 120만원에 6개월 근무하는 조건의 일자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강진군 주민복지과에서 업무보조를 하며 어려운 가정 방문을 통해 사회복지 분야의 업무에 대해 지식을 넓혀 갔고, 내가 갖고 있는 소규모 수리 서비스 재능도 기부했다. 모두가 고마워했으며 『맥가이버』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렇게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즈음 3개월 된 셋째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는 연락이 왔다. 전문의께서 소견서를 써주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백혈병 초기증상인 혈소판 감소증이라고 한다. 새벽에 급하게 출근해 준 의사의 혈소판 판독과 응급처치로 인해 다행히 아이는 살 수 있었으나 10시간 동안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며칠간 입원 치료를 하며 경과를 지켜봐야만 했다.

 

  이젠 병원비가 걱정되었다. 다행히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긴급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기초수급자로 책정되었다.

    

 

사회복지사라는 꿈을 갖고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오다

   그런 와중에 그 동안 추진해 왔던 소규모 수리 서비스가 강진군 특수시책 사업인 『긴급출동! 만물목공소』로 운영하게 되어 인턴 6개월 종료 후에도 사회복지도우미로 강진군에 계속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중앙원격평생교육원 사회복지사 2급 과정을 장학생으로 수강하게 되었다.

    

 

부채라는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세 번째 기회가 찾아오다

   자활사업에 대한 전문지식을 익히면서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을 품었다. 그러나 희망의 씨앗을 틔우기 위해서는 신용회복이 급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 상담한 끝에 부부 파산을 신청했고 다행히 파산 면책 통보를 받아 부끄럽지만 부채라는 큰 암 덩어리를 도려냈다.

    

 

자활사업 참여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다

   우리 부부는 자활기업 설립을 목표로 인큐베이팅사업단 자활사업에 적극 참여하였다. 나의 사회복지사 2급 취득과 함께 아내 또한 사회복지사 2급,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법원의 파산 면책과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으로 취업의 문이 열려 네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그 지독한 머피의 법칙 늪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전남강진지역자활센터에 사회복지사로 채용되어 자활근로 참여자에서 자활근로사업단 팀장으로 제2의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희망키움통장 사업에 가입하다

   나는 조리, 인큐베이팅, 어르신일자리, 신규추진 사업인 자활근로사업단 조청사업단의 팀장이 되었다. 취업과 동시에 희망키움통장 사업에도 가입을 했다.

 

   다섯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강진군이 추진한 세 자녀 이상 무상 임대주택 행복울타리 2단지 입주자로 선정되었고 입주자 대표까지 되었다. 행복울타리에는 아이들만 40명인 10가구 총 60명의 어려운 사람이 함께 생활했다. 입주자를 중심으로 자활사업과 희망키움통장사업, 신규로 추진 중인 조청사업에 대해 홍보와 설명을 하고 참여를 권유해 5가구가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행복울타리 2단지 입주자 중심으로 자활기업을 추진하다

   아내를 포함하여 5명의 입주 여성이 서로 아이들을 부양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자활사업 참여, 희망키움통장 가입, 3년 뒤 자활기업 창업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식품위생법 교육과 사회복지사업을 병행할 목적으로 5명 모두가 요양보호사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본인 또한 3차례 척추 수술로 병마와 싸우며 쌍둥이를 포함 4명의 자녀를 홀로 부양하고 있는 옆집 아주머니를 향후 자활기업 대표로 함께 하기 위해 자활사업에 참여시켰다.

 

  과거 실패의 아픔을 잘 알기에 참여자를 독하게 공부시켰다. 참여자 모두에게 독하다는 말을 들었다.

    

 

자활기업 성공을 향해 끝임 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다

   나와 아내는 전라남도 황칠 명품화 육성 RIS사업단 창업아카데미 6개월 과정을 수료했다. 강진군에서 추진한 농산물마케팅 대학에 입학해 인맥을 넓혔고, 향후 조청 홍보 및 판매를 목적으로 선진지 견학과 지자체 지원 사업에 대해 배움을 계속했다.

 

  마을 전체 할머니들께서 조청과 엿을 만들어 판매하는 전북 임실군 학장마을 ‘박사골 영농조합’을 벤치마킹도 했다. 

 


강진다산조청, 강진청자조청 특허를 취득하다

   전통식품에 조예가 있는 장모님을 강사로 초빙해 참여자와 함께 한달 동안 합숙하며 모든 참여자가 조청을 제조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켰고, 원재료인 엿기름은 어르신 일자리 사업단에서 제조해 납품하도록 했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애민 육조에는 엿 만드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교육을 통해 배운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위해 한약재 10가지가 들어간 기능성 조청을 만들어 특허를 취득했다.

    

 

KBS 6시 내 고향에 방영 되다

   중앙자활센터 자활생산품 경진대회에 참여해 홍익대학교 디자인과 학생의 포장재 디자인을 재능기부로 받았으며, 홍보 목적으로 서울 코엑스 전국 자활생산품 경진대회에도 참여해 황칠조청과 인절미 떡을 시식하도록 했다.

 

  SNS 홍보 또한 열심히 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KBS ‘6시 내 고향’에 황칠조청과 흑미조청이 전국에 방영되어 우리 조청이 전국에 유통될 수 있었고, 지금도 체험과 구매 문의가 계속해서 오고 있다.

    

 

홍익대학교 학생이 재능기부한 포장재 디자인을 제작하다

   자활근로 사업비가 부족해 강진군 농산물마케팅 대학 수강 중 배웠던 지자체 지원 사업에 도움을 요청했다. KBS ‘6시 내 고향’에 방영된 황칠조청을 설명했다.

 

  포장박스와 용기 구입자금 50%를 지원받아 조청 포장박스를 제작했고 조리사업단을 식품제조가공업으로 허가를 받아 조청을 전국에 유통할 수 있었다.

    

 

강진군에서 식품제조가공 작업장을 신축하다

   2015년 강진의 군유지 700평에 강진원 강진군수님께서 식품제조가공 작업장을 신축해 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셨다. 현재 강진지역자활센터에서는 이곳에 조청사업단을 재구성하여 전통 조청을 제조 판매하며 수익금 적립으로 또 다른 자활기업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황칠나라 강진점이 자활기업 인증을 받다

   전라남도 황칠명품육성 RIS 사업단에서 교육을 받은 2명과 조리사업단 참여자 4명 등 총 6명으로 『황칠나라 강진점』을 추진했다. 행복울타리 2단지 입주자가 중심이 되었다. 그 중 신용이 좋은 쌍둥이 엄마를 대표로 자활기업 설립을 추진했다. 3년간 적립한 조리사업단 적립금으로 3가지 사업을 병행할 계획이었다.

식품제조가공업, 일반음식점, 지자체가 위탁하는 사회복지사업 추진을 목표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자활기업 인증을 받았다.

    

 

자활기업을 재차 협동조합으로 추진하다

   자활기업을 창업하였으나 사업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나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고민 끝에 자활센터를 퇴직하고 자활기업에 참여했다. 창업아카데미 교육과 강진군 마케팅 대학에서 배웠던 지식과 강사님들의 도움으로 자활기업을 협동조합으로 운영하기 위해 2014년 12월 22일 『행복울타리협동조합』을 전라남도로부터 설립인가 받았다.

 

   2015년 3월 1일 드디어 7명의 조합원이 각각 70만 원씩을 출자하고, 자활적립금 7천만 원, 자활기금에서 융자받은 전세자금 5천만 원으로 15평의 식품제조가공 공장과 80평의 일반음식점 허가를 받았다.

  2015년 황칠백숙 전문점을 완성하고 2016년 조청사업 완성을 목표로 강진군 결식아동 밑반찬 배달사업도 함께 시작했다.

    

 

서울대학교에서 추진한 녹색대학에 입학하다

   자활기업을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면서 강진군이 추진하고 있는 마케팅 대학교 1기 과정과 강진군 농업기술센터의 농산업 창업아카데미 1기를 수료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와 강진군이 추진 중인 녹색대학교 발효 기초과정 11기에 입학하여 수강 중이다. 강사님들을 주 마케팅 대상으로 선정했고 많은 성과가 있었다.

    

 

황칠나무 발아 흑미조청! 조청사업에 희망이 보인다

   곡성 유기농 쌀 재배업체 미실란의 대표인 『대한민국 신지식인 이동현 박사님』을 만난 것 또한 큰 희망을 주었다. 미실란의 발아 흑미를 구입해 만든 황칠나무 발아 흑미조청에 대해 미실란과 콜라브레이션 협약을 맺고 조청을 납품하게 되었다.

   또한 생활의 달인에 소개된 서울 강남의 유명한 쌀 빵 전문점 『외계인 방앗간 김성훈 교수님』과 업무협약을 맺고 25개 외계인 방앗간 가맹점에 조청을 납품하고 있다. 외계인 방앗간은 2017년 100개의 가맹점을 목표로 하는 쌀 빵 전문회사이다. 외계인 방앗간 가맹점인 현대백화점무역센터점에서 우리 조청이 판매 되고 있다.

    

 

희망키움통장 만기로 주택을 구입하고 탈 수급하다

   각 사업별로 큰 성과를 내어 희망키움통장 만기와 생활여건이 향상된 조합원 3가구가 탈수급 했으며, 나도 자활사업 참여, 자활기업 창업, 희망키움통장 만기 등으로 2016년 3월 내 집을 마련하였고 탈수급도 하였다. 앞으로도 취약계층을 지속적으로 고용할 계획이다. 우리 가족이 살았던 무료임대주택인 행복울타리 2단지에는 다른 어려운 가족이 입주해 희망을 키우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

    

 

사회 환원과 작은 나눔을 실천하여 행복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다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나였지만 강진군의 인구증가정책, 강진지역자활센터의 『자활근로사업』과 『희망키움통장사업』이 든든한 디딤돌이 되었다. 그 동안 기초생활수급자로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작은 것부터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착한가게 34호점에 매월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으며, 학원비가 없어 힘들어 하는 조합원 가정에 학원비 또한 지원하고 있다. 지역사회 봉사클럽에 참여해 재능기부 및 금전기부를 통한 지역사회 봉사에도 앞장서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큰 아들이 비행기 정비사로 공군에 입대해 직업군인이 되었으며, 둘째 아이는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 늦둥이 셋째도 초등학교 2학년이다. 모두 우리 집 보물들이다.

   나는 끝없이 배우고 창의적 발상으로 도전하는 성공한 농촌 CEO가 될 것이다. 미실란, 외계인 방앗간, 행복울타리협동조합과 함께 동반 성장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어려울 때 나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준 국가와 강진군, 그리고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인 사회 환원을 다짐해 본다.

  나 같은 사람들이 꿈과 열정으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말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