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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인생의 꽃길이 된 운동화 세탁
  • 년도2018
  • 기관명경북영주지역자활센터
  • 제출자이원자
  • 조회수2,398

  2017년 9월 요즈음 가을 하늘은 너무나 맑아 보입니다. 이제는 창업한 운동화 빨래방에 다니면서 아침마다 날씨를 체크하는 버릇이 생겨서인지 하늘을 보는 습관과 잠시나마 여유를 갖는 시간도 생겼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생활이 달라지니 웃음과 여유가 절로 생기고,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연히 마주한 자활 사업

  2006년 남편과 이혼한 후 두 딸과 생계를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았지만 나아지기는커녕 살아갈수록 힘든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두 딸을 교육시키고 이제는 가장이 되어 버린 내 자신을 보며 치열하게 살았지만 형편은 제자리걸음인 현실에 절망하고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자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수급자에서 탈락되지 않도록 일자리를 제공해 준다는 말에 생계를 위해 자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주 지역자활센터에서 ‘자활’에 대한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고, 그저 여기서 일해서 돈을 벌어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자활 사업, 시작은 했지만

  처음 주 지역자활센터에서 시작한 일은 복지시설 생활관 도우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도 저들과 같은 사람이고 능력이 있는데 왜 이것밖에 하지 못할까’ 하는 열등감으로 대인 기피증을 앓으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좌절감까지 맛봐야 했습니다.

 

  좌절감으로 인해 무기력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이 사업단에서는 계속 근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타 사업단으로 이동하게 해달라고 센터에 요청했습니다.

 

  두 번째로 시작한 일은 간병 사업단에서 어르신들을 간병하는 일이었습니다. 병원 간병 일을 배우면서 적성에는 맞지 않았으나 그래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지고 이전 사업단에서 겪었던 좌절감과 대인 기피증도 조금씩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시장 진입형’으로 올라가서 ‘자활 기업’ 창업을 준비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당시 센터 담당자의 권유에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센터 담당자의 권유는 저를 다시 뒷걸음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좌절을 맛본 채 다른 사업단으로 이동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간병 사업단에 있으면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음에도 자신과 용기가 없던 내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시간이 없어서’, ‘애들을 봐야 해서’라며 끊임없이 다른 것들에 책임을 전가하고 미뤘던 시간들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운명, 운동화 세탁을 접하다

 2014년 6월 자활센터에서 새롭게 꾸려진 운동화 세탁 사업단으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이 사업단에서 ‘마지막으로 배워 보자’라는 심정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사업단이기 때문에 갖춰진 것도 배워야 할 것도 태산이었습니다.

 

  당시 담당자도 운동화 세탁을 처음 시작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담당자와 함께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서 아이들 운동화를 세탁하듯이 하면 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운동화를 세탁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운동화 세탁 기술을 배우기 위해 경북 포항으로 선진지 견학을 가는 등 운동화 세탁 기술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기초 지식은 배울 수 있어서 이 정도면 해볼 만 하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업장 오픈, 본격적인 사업 시작, 첫 번째 고비

  처음으로 매장을 오픈한 날, 이곳에서 열심히 해서 보란 듯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다른 경쟁 업체보다 낮은 가격, ‘당일 수거, 당일 배송’이라는 슬로건과 차별성, 근거리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충분히 매상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했던 걸까요.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매상은 기껏해야 50여만 원을 겨우 넘길 뿐이었습니다. 홍보가 되지 않아서 일까, 세탁 기술이 부족해서일까. 당시 사업단 구성원 모두가 걱정과 근심으로 고민했지만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사업단 내부에서 책임 공방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투는 일들이 잦아졌고, 서로 불신하고 배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사업 담당자께서는 다툼이 잦았던 다른 참여자 분들을 타 사업단으로 이동시키며 사업단의 안정화를 꾀했지만, 저는 이러다 사업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매출은 상승했지만, 다시 느낀 좌절감

  기존에 함께했던 분들이 다른 사업단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분들이 참여해 제게 세탁 일을 배우며 센터 담당자와 함께 사업단을 꾸려 나갔습니다.

 

  입소문이 퍼져서일까요, 매출이 조금씩 올라가더니 월 매출이 약 120여만 원으로 올랐습니다. 처음보다 두 배 가까이 오른 매출을 보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창업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마찰이 생겼고, 급기야 한 분이 다른 사업단으로 옮기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는데’, ‘왜 일을 저렇게 하나’ 하는 자격지심이었나 봅니다. 대인관계에서 오는 실망감은 창업에 대한 기대를 꺾었고, 좌절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업단에서의 ‘웬수’, 하지만 현재는 조력자인 담당자를 만나다

  2015년 9월 지금의 조력자인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기존에 담당해 주던 실장님이 업무를 새로운 담당자에게 인수·인계한다 며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자활센터의 직원 분들이 자주 바뀌는 모습을 봐서일까요, 오래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매장에 찾아와 일은 어떤지,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담당자가 매주 1회 회의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회의를 한다고 별다른 것이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회의에 계속 참여하다 보니 사업체 운영에 대해 내가 몰랐던 부분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현재 담당자에게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 매출로는 ‘자활 기업’으로 창업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매출을 기억하기로는 120~160여만 원이었고, 전임 담당자인 실장님도 늦어도 2016년 7월에는 자활 기업으로 나가겠다고 해서 그렇게만 믿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지금 매출로는 창업할 수 없다는 얘기는 저를 다시 좌절하게 만들었고, 담당자가 야속하기만 하고 웬수처럼 느껴졌습니다.

 


기다림, 좌절의 연속, 그리고 작은 불씨의 희망

  사업 담당자가 매출이 적어 창업을 막은 이상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서였을까요. 또다시 함께하던 분들이 운동화 세탁이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다른 사업단으로 모두 이동했습니다.

 

  저와 담당자가 설득을 했지만 운동화 세탁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서 더 이상 하지 못하겠고, 창업에 대한 비전이 없어서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이 사업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절망과 좌절을 다시 겪게 되었습니다.

 

  담당자와 따로 상담을 하며 그동안 힘들었던 점,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담당자의 생각을 공유했지만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분들이 사업단에 배속되었고 새로운 마음으로 운동화 세탁을 하면서 매출이 점차 늘었고, 그래도 창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끝나지 않는 담당자와의 갈등, 그리고 이해

  기존의 사업장은 배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리가 너무 좁아서 점차 늘어나는 세탁 물량을 감당하기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이사를 건의했으나, 담당자는 기다려 달라며 알아보는 중이라는 말만 계속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찾아본 이사 위치는 너무 좋지 않다, 사업성이 없다,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는 말만 하며 기다려 달라고만 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싫어 담당자와의 갈등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났을까요. 매출 상승과 더불어 담당자가 드디어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며 이사할 곳을 보여 주었습니다. 위치도 마음에 들고 월세도 비싸기는 했지만, 매출액이 상승한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이 자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괜스레 담당자와 갈등을 빚었던 내 모습이 생각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따로 내색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 급등한 매출, 기업으로의 준비

  2017년 2월, 드디어 고대하던 새로운 매장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가끔씩 공사하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새로운 세탁 기계와 기존 기계를 모두 옮기고 새롭게 단장한 매장을 둘러보니 행복이 무엇인지 창업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창업에 걸림돌인 매출은, 매장을 이전하고 첫 달은 3백여만 원, 다음 달은 5백여만 원, 그 후로 가장 높은 7백여만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꿈만 꿨던 5백만 원을 훌쩍 넘긴 것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기분이었고, 지금까지 잘 몰랐던 담당자의 노력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홍보를 하고, 영주시 엄마들의 온라인 모임에 가입해 지속적으로 홍보함으로써 입소문을 내고, 새로운 기술로 카시트, 유모차 등의 고부가 세탁을 했던 것이 높은 매출의 원동력이 된 것 같았습니다.

    

 

꿈과 희망이 현실로, 가시밭길에서 꽃길로

  2017년 7월 1일, 자활 기업으로 드디어 창업을 했습니다. 꿈만 같았던 창업이 현실이 되니 처음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가 지금에서야 조금씩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매출액은 5백여만 원 정도, 지속적인 단골 고객의 방문, 꾸준한 신규 고객의 유입은 그동안 고생했던 내 삶과 운동화 세탁에 쏟았던 열정을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이제야 자녀들에게 당당한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고객 한 분 한 분을 만날 때마다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듭니다. 온전한 기업이 되기 위해 센터와 담당자와 충분히 상의하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착한 가격 가게 선정’, ‘지역사회 보장 협의체와의 협약 체결’, ‘전문 세탁 기술 습득’ 등 여러 가지 일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기업 운영이 버겁기는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그동안 고생했던 가시밭길에서 벗어나 당당히 성공한 ‘자활인’으로 꽃길만 걷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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