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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딛고 일어서기까지
  • 년도2018
  • 기관명제천지역자활센터
  • 제출자현수경
  • 조회수1,861

  6년! 벌써 6년 세월이 흘렀다.

 

  젖먹이 어린 아들을 업고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며 사선을 헤쳐 찾아온 내 고향 대한민국. 한 번 잡혀 북송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장장 5년을 살았다.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온다는 수용소에서 나는 오직 생존만을 위해 이름도 모르는 풀을 뜯어 먹고 생활해야 했다.

 

  이름 석 자도 없는 개보다도 못한 생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역을 치다. 여름에는 산에 올라가서 풀을 매고, 겨울에는 낫 하나로 나무를 베어 뛰면서 날라야 했다. 임산부,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매일 눈앞에서 총에 맞아 죽어 가는 사람들……. 끔찍한 참상들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인간이 낼 수 있는 마지막 힘을 다해 버티고 또 버텼다. 힘든 나날들에 희망을 잃어 가며 죽고 싶었지만 내게는 갓 돌이 지난 아들이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나와 같은 시련을 주고 싶지 않아서 무작정 아들을 업고 중국과 태국, 그 무시무시한 악어강을 건너갔다.

 

  언어도 문화도 핏줄도 하나인 대한민국, 아들과 함께 행복의 눈물을 흘리며 이 땅에 발을 디뎠다.

 

  처음 나를 찾아온 분은 경찰서 담당 형사님이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면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취미로 노래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형사님의 권유로 제천예술단에 들어갔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힘든 일들을 잊을 수 있었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전국을 다니며 지역의 문화를 몸소 체험해 보고, 조금씩 적응하면서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함께 노래를 부르던 새터민 동료에게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어린 아들까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보였다.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아들과 함께 심리 상담 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품고 왔던 희망, 기대했던 꿈도 현실과는 너무 달랐다. 그때부터 사람들을 만나기가 무서웠고 밖을 나가기 싫었다. 어린 아들은 면역력이 약한 탓에 폐렴과 고열을 자주 앓아서 잠시도 아이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의 문은 굳게 닫혔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신세를 한탄하고 주변 환경을 원망하며 절망에 빠져 허덕이고 있었다.

 

  그때다. 나보다 먼저 대한민국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던 동료가 함께 일해 보자며 손을 내었는데, 그곳이 제천 지역자활센터다.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점점 성장해 가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일을 해야 했다.

 

  자활센터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일할 수 있는 첫 직장이었다. 복지 도우미로서 사무 업무도 해봤고, 바느질로 가방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어떤 일도 쉬운 일은 없었다.

 

  일을 하다 보면 일주일에 서너 번 유치원에서 아이가 아프다며 전화가 왔다. 사무실에 연락을 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이가 아프면 편히 맡길 곳이 없는 나로서는 매번 조퇴와 결근을 반복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서인지 또래 아이들보다 많이 성숙하다. 8살, 친구들을 따라서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인데 투정 한 번 부리지 않는 아들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지만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잦은 결근으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에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주일 내내 쉼 없이 일했고, 결국 허리에 무리가 왔다. 디스크 판정을 받아 더 이상 식당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아들의 유일한 보호자인 내가 쓰러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건강을 챙기며 자활센터 일에 전념했다.

 

  지금은 저소득 가정을 직접 방문해 방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거나 혼자 생활하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장판 아래, 싱크대 속에 있는 바퀴벌레는 기본이고 곰팡이, 썩은 음식들……. 열악한 생활환경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매월 1회 직접 가정을 방문해 어르신들의 안부를 물으며 조금씩 생활환경이 개선되는 것을 보면 뿌듯함이 느껴진다.

 

  대한민국에 정착해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내게 미소를 안겨 준 것은 해드림 김숙 반장님을 비롯한 구성원들이었다.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일러주고, 조금도 부담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참 고맙다. 언젠가 보답할 길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아직 수급자로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지만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아들은 내가 걸어온 길을 걷게 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 가야 할지 모르는 굴곡 많은 운명의 길을 눈물 없이, 아니 눈물을 흘리면서도 꿋꿋이 걸어 나가 대한민국의 훌륭한 아들로 성장하게 할 것이다. 아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살아가고 있다.

 

  세상과 사회를 등지고 어둠의 구석에서 헤매던 나를 밝은 빛 비치는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 준 고마운 보이지 않는 손길들, 힘들 때는 용기를, 아플 때는 마음을, 외로울 때는 웃음을 주는 자활이 있기에 만만치 않은 사회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아직 서럽다. 나는 아직 힘들다. 나는 아직 마음이 아프다. 고난과 시련은 여전히 나를 따르겠지만 차츰차츰 헤쳐 나갈 것이다. 희망의 빛은 어둠을 버리고 내 앞 길을 밝혀 주리라 확신한다! 가을이다. 아울러 나의 마음도 가을의 계절에 어울리며 함께 풍요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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