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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어진 날개, 자활 참여로 다시 솟아난다
  • 년도2018
  • 기관명충북제천지역자활센터
  • 제출자김다희
  • 조회수1,848

  중학교 때 동생의 갑작스런 사고로 집안이 풍비박산했다. 나이도 어렸고 뭐가 무슨 상황인지 잘 알지도 못했던 때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이혼한 후 혼자 우리를 키우셨던 터라 누군가 옆에서 위로나 힘이 되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슬퍼할 틈도 없이, 우리는 순식간에 빚더미에 앉았다.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집안을 뒤지며 돈을 내놓으라며 서랍을 뒤지고 문을 걷어찼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엄마는 하루가 달리 말라 갔다. 합의도 잘 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그저 본인들 말대로만 얘기했던 걸로 인해 모든 건 동생이 잘못했다고 판결이 났다고 한다. 그 이후 생활이 점점 더 힘들어졌던 엄마는 결국 수급자 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그것마저 순탄치 않았는데 다행히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수급자가 됐다고 한들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학교 갈 버스비가 없어 아프다는 핑계를 대기 일쑤고, 학교를 나가도 살을 뺀다는 핑계로 밥을 굶었던 적도 많다. 난 그게 싫었다. 창피했고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그렇게 졸업을 했다.

 

  고등학교는 최대한 취업이 빨리 될 수 있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갔다. 1학년 때부터 편의점에서 잠깐씩 하는 아르바이트나 전단지 아르바이트 같은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취업에 한발 다가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내게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1년 동안 아르바이트의 신분으로 정말 힘들게 일했다. 집안의 가장은 나 하나고 동생은 항상 병원이 집이었다. 서비스직이라는 이유로 열정 페이를 받아야 해서 한 달 급여는 고작 70만 원이 전부다.

 

  나 하나가 벌어 세 명이 생활하기에 빠듯하기 그지없는 돈이었다. 엄마는 우울증과 허리디스크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해 나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난 좋았다. 나만 열심히 하고 나만 열심히 뛰면 우리 집도 언젠가는 빛을 보리라는 생각으로 1년을 버티고 버텼다.

 

  그런데 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수급자인데 말도 안 하고 일을 했다는 이유로 그동안 지급했던 수급비를 토해 놓으라는 연락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칙이 그렇다면 미리 이야기해 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이 터져라 울었지만 일은 벌어진 후다.

 

  내가 몰랐다고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답변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지금은 일을 해서 갚는 방법밖에 없으므로 자활센터라는 곳에 참여하라고 했다.

 

  그 당시 내 나이 20세, 지역자활센터가 무엇인지, 무얼 하는 곳인지도 몰랐던 나는 방법이 없어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곧바로 지역자활센터라는 곳에 전화를 해 참여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일정이 잡히면 연락을 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해 일주일 정도를 기다렸다.

 

  첫 상담을 받을 때 비로소 어떤 곳인지 설명을 듣고 알았다. 함께 상담 받은 분들이 모두 내 어머니 같은 분들이어서 젊은 나이에 어쩌다 오게 되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지역자활센터에 참여하고 상담을 받으면서 편하고 좋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분들과 나를 이해해 주는 분들 많아 기뻤다.

 

  자활에 참여하면서 내가 몰랐던 일들이나 좋은 정보를 많이 알 수 있었다. 처음 참여하면서 시작 했던 사업단은 ‘디샾’이라는 공방 같은 곳이었다. 바느질도 처음 이고 재봉 같은 것을 접해 보지 못해 손도 많이 찔리고 다쳤다.

 

  하지만 실력이 점점 늘더니, 아, 내가 이런 것도 하면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월 급여는 수급자라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만족했다.

 

  한창 자활에 참여하고 있을 무렵 엄마는 점점 망가져 갔다. 시청에 갚아야 할 부정 수급비 630만 원과 점점 밀리는 월세, 집세 보증금 문제까지 다 터져 버리니 점점 약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는 날이 늘었다.

 

  주변에서는 항상 엄마에게 일하라고 권유했지만 엄마는 자꾸 그 말을 회피하고 안 들으려고만 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엄마가 자살을 시도해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연락이 왔다. 심장이 발끝으로 뚝 떨어지는 심정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엄마는 이미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이었다.

 

  그때 내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기도조차 드리지 않았던 내가 하느님, 부처님을 찾은 적이 처음이었다. 엄마의 자살 기도는 그 뒤로도 끊이지 않았다. 연탄으로도, 칼로 손목을 긋기도, 약을 왕창 털어 붓고, 길가에 눕기도…….

 

  정말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 도움을 청했다. 지역자활센터와 연관이 있는 희망나눔콜센터에서 혹시 병원비나 월세 지원 같은 것을 받을 방법이 있을까요? 기대조차 하지 않고 담당자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병원비와 월세 지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불행은 없을 거라며 웃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날 정도로 생생하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 엄마의 사정을 알고 있던 엄마 친구 분이 보증금을 빌려주겠다고 해서 들어왔던 건데 그분이 엄마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당장 보증금을 빼 달라고 난리가 난 것이다.

 

  부탁드렸다.

 

“지금 사정이 너무 좋지 않으니 제가 되는 대로 꼭 갚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지만 그분은 단호하게 당장 빼라며 성화고, 엄마는 또 술에 의존하고 죽으려고만 했다. 계속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젠 나도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고 아직 죽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도 그때는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인생을 왜 살아야 하지’, ‘이러면서 왜 살아 있어야 하지’라는 의문만 가득했다.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으로 사업단 담당자인 실장님께 방법이 없겠냐고, 진짜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말 드렸다. 시청 쪽에 한번 물어보라고 알려주셔서 찾아가 이런저런 내 사정을 말했다.

 

  그런 지원은 힘들 것 같다는 말만 듣고 한껏 우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알아볼 텐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너무 기대는 하지 말라는 소리다. 기대하지 말라는 소린데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다는 소리로 들렸다.

 

  그리고 그런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너무 감사하고 감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다 해드리고 싶을 정도다. 보증금 지원으로, 우울했던 감정이 해소되고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카페동네’라는 사업단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커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배우면서도 재밌고 신이 났다. 한참 일에 흥미를 가지고 있을 때 실장님이 조금 더 열심히 해서 꼭 창업을 나가라고 희망 찬 말도 많이 해주었다. 정말 나는 이 가게가 장사가 정말 잘되어 창업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기술을 좀 더 연구하고, 기회가 닿는다면 바리스타 자격시험도 볼 생각으로 준비 중이다. 흥미에 맞는 일이라 그런지 힘든 일도 재밌게 느껴지고 함께 일하는 분들도 너무 좋다. 자활에 참여하면서 좋았던 일은 이뿐이 아니다. 센터에는 엄마의 우울증치료 지원과 절대 일하지 않으려는 엄마를 일하게 해주었다.

 

  정말 모든 일이 꿈같은 요즘이다. 매일 술에 의존하며 희망이라고는 없던 우리 엄마를, 우울증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던 우리 엄마를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일하게 해준 지역자활센터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엄마가 마음을 다잡고 일을 시작해서인지 요즘 내 마음도 편안하다. 예전에 엄마가 항상 술을 달고 살 때는 언제 어디서 전화가 올지 몰라, 일하면서도 불안에 떨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가게를 나오면 신이 나서 더 웃게 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이 사업단이 창업을 나가려면 매출을 더 올려야 하므로 어떻게 하면 손님이 더 많이 올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 있다. 부족하기는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원하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힘들었고 아직도 나아졌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지역자활센터라는 곳에 참여하면서 내 인생이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나이에 다른 일을 하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이곳이 꼭 몸이 아프고 어려운 일을 하지 못해서 오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처럼 경험도 쌓을 수 있고, 정말 내가 힘들 때 손잡아 주는 곳이기도 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곳이기에, 나는 지역자활센터에서 일을 한다. 마지막으로 자활을 끝내게 될 때 여전히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꼭 창업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지원을 받아 운하는 곳이 아닌, 함께 모여 가게를 이끌고 싶은 마음이 가득 하다. 뭉치면 못 할 것이 없고 간절하면 못 이룰 게 없다는 말이 있다. 그 마음만 가진 채로 지금보다 더욱더 많은 노력을 하는 내가 되려 한다.

 

  제목처럼 꺾어진 날개가 지역자활센터에 참여함으로써 다시 솟아나고 있다. 인생은 꼭 즐거운 일만 있을 수는 없는 것처럼, 꼭 슬픈 일만 있으라는 법도 없다. 웃으면서 힘들어도, 그 힘든 일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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