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홍보

67, 청춘! 아직 시작도 안했다
  • 년도2018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이중연
  • 조회수898

63세

  지역자활센터 자활 사업에 첫발을 들을 때, 내 나이다. 한평생을 일용 잡부로 살아왔다. 그래도 언제나 당당하게 떳떳하게 살았다. 건강했고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다. 사지 멀쩡한데 굳이 남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정말 매일매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른다고,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아픈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 날이 줄고 버는 돈도 줄었다. 병원에 가는 날은 늘고 집에서 혼자 쉬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50대도 지나 60대에 접어들었다.

    

 

수급자

  언젠가부터 시청에서 매달 나오는 돈으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돈보다 필요한 것이 의료 급여다. 병원으로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픈 곳이 좀 있지만 젊은 날처럼 뛰어다닐 수는 없다 해도 또래보단 여전히 건강하고, 아직 10살 어린놈들과 비교해도 거뜬한 체력이라 자부했다.

 

  당장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급자여야 하지만 일이 하고 싶었다. 일자리를 간절하게 원했지만 환갑이 넘어가니 정말 쉽지 않았다. 요즘은 50만 넘어도 일용직으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간간히 일자리를 찾아봐도 날 찾는 곳도, 사람도 없다.

    

 

참여 주민

  어느 날 술자리에서 친구 조카가 말했다. 자활 사업이라는 게 있다고. 수급자가 일할 수 있고 수급자에게만 일을 주는 복지관이 있다며, 지금 자기도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에서 어려운 사람에게 싸게 주는 쌀, 나라미를 배달하는 일인데, 최근 자리가 비어서 사람을 뽑고 있다고 했다. 20킬로그램 쌀 포대를 들고 날라야 해서 그래도 힘 좀 쓰는 사람이 필요하고, 특히 수동 운전이 가능하면 더할 나위 없다고 했다.

 

  근데 급여가 작고 일을 시작하면 생계 급여가 나오지 않아 실제 소득에는 별 차이가 없단다. 근데 무슨 대수더냐, 난 일이 하고 싶었고 게다가 힘쓰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토록 바라던 일 아닌가? 그렇게 난 2013년 11월 자활 사업의 참여 주민이 되었고, 정부 양곡을 배송하는 나눔택배 사업단의 일원이 되었다.

    

 

근로자

  회사에 다닌다. 일하는 복지관, 센터? 아직 회사 이름은 낯설다. 일하는 시간이 딱딱 정해져 있고, 빨간 날은 다 쉰다. 일찍 일하고 일찍 퇴근하고 싶은데 그건 안 된단다. 나눔택배 말고 다른 일도 많이 있다. 일하는 사람도 꽤 많다.

 

  역시 돈은 땀 흘려 벌어야 그 가치가 있다. 이것이 내 신념이다. 1백 세 시대 아닌가.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고, 앞으로 10년도 끄떡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난 더 병이 생기는 체질이니까. 자, 하루 일과를 시작하자.

    

 

  1톤 트럭을 몰아 매달 1천 가구 정도를 돌며 나라미를 배달한다. 나와 같은 수급자들이 동사무소에 쌀을 신청하면 센터가 명단을 받고 정리해서 내게 넘긴다. 나는 그 목록을 보고 하루에 1백여 곳을 방문한다. 무더위에 고생한다며 냉커피 한 잔 내미는 사람들이 더러 많다. 참 고맙고 보람을 느낀다.

 

  대부분이 따뜻하게 나를 맞이해 준다. 하지만 꼭 한두 명 나쁜 사람이 있어서 하루를 지치고 힘들게 한다. 택배 기사가 사람 취급 못 받는다, 듣기만 하다가 직접 당해 보니 정말 답이 없다. 앞뒤도 없이 언성을 높여 가며 욕설을 퍼붓고, 뭐만 하면 시청이니 복지부니 찌른다고만 한다.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수급권도 권리라 해도 그리 자랑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 좋으련만, 그게 참으로 어려운가 보다. 일은 참 재미있는데.

    

 

창업

  일한 지 1년하고도 반이 좀 넘었을까? 이제 내가 소속된 곳이 독립을 해야 한다고 했다. 거기에다 공동대표가 된다고 한다. 내가 센터에서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배달해서 번 돈만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 2명과 내 급여를 줄 수 있고 사무실도 꾸릴 수 있단다. 센터 지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보다 오늘, 내일 더 당당하게 일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대표가 된 것은 아니다. 나도 안다. 긴 시간 함께 고생한 동료가 있었고 부단히 날 감내해야 했던 담당자도 있었다. 주도적이지는 못했지만 수동적이지도 않았다. 자활 기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른다. 다만, 센터를 믿고 그저 성실하게, 보다 성실하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아, 봉급이 오른다니 기쁘다. 그런데 한편으로 걱정도 생긴다. 수급이 탈락되면 어쩌나. 담당자 말로는 바로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내 나이 65세에 병원비는 감당할 수 있을지.

    

 

변화

  난 일반 수급자다. 생계 급여와 의료, 주거 급여를 받았다. 그리고 생계 급여 대신 일을 해서 자활 급여를 받았고, 이제 곧 자활 특례가 된다고 한다. 근데 자활 특례가 뭐지. 이게 탈수급인가.

 

  요 근래 전립선에 이상이 있어 병원에 다니고 있고 조만간 수술도 해야 하는데. 병원비 걱정에 조바심이 커졌다. 결국 앞뒤 가리지 않고 시청으로 달려갔다. 다행이 의료 지원은 계속 받을 수 있다고 하니 한시름 덜었다.

 

  담당자와 센터 직원들은 축하한다고 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자활 기업인지 뭔지 이제 반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자꾸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1년이 더 지난 지금의 난 일반인이다. 재산도 없는데 차상위도 거치지 않고 어느 날 홀랑 보통 사람이 되었다. 세금도 낸다. 급여는 오히려 조금 줄었다. 건강 보험료는 왜 그렇게 비싼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 이제 나라미도 안 된단다.

    

 

택배 기사

  이젠 일도 많이 수월하다. 3년을 넘게 다니면서 적응도 됐겠지만 바뀐 것도 많다. 임시 창고지만 전보다 높고 널찍하게 하나 지었고, 무엇보다 지게차가 생겨서 좋다. 솔직하게 말하면, 배송하기 전에 쌀을 빼고 싣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또 그 쌀을 다시 배송일 아침마다 1백 개 넘게 창고에서 차로 일일이 손으로 날라 옮겨 싣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배달도 하기 전에 힘을 다 빼야 했으나 담당자인 젊은 놈은 잘 도와주지도 않았다.

 

  올해부터는 10킬로그램 쌀도 나왔다. 20킬로그램짜리 하나를 드나 10킬로그램짜리 두 개를 드나 그게 그건데 희한하게 가벼운 느낌이다. 물론 처음에는 많이 헷갈려 했다. 포대 수만 확인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무게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담당자가 배송 명단에 재치 있게 색깔로 표시해 두었다. 이런 건 머리가 좀 돌아가더라.

    

 

67, 청춘! 아직 시작도 안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건강하다. 이제 아픈 것도 많이 나았다. 역시 일을 해야 건강에도 좋다. 규칙적으로 살게 되고 게다가 양곡 택배는 저절로 운동도 되니 일석이조 아닌가. 술도 한 달에 한번만 마신다. 배송 업무가 끝나는 그날 하룻저녁만. (후후)

 

  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우리 센터의 많은 사업 중에서 그래도 양곡 택배가 단연 제일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다른 센터는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센터에서는 내가 최고령이다.

 

  최근에는 하고 싶은 것도 생겼다. 진로라고 하나? 꿈이 있다. 담당자를 만나서 실컷 자랑도 했다. 내 나이 몇 개 더 먹어서 이제 정말 못하겠다 싶어 나눔 택배를 나가더라도 놀지 않고 계속 일할 것인데,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다.

 

  지역 대학교에서 야간 경비를 서는 일인데. 교육도 받아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것도 좀 있는 것 같아 미리 생각해 봤다고 담당자에게 말했다. 대학교 경비원, 맘에 든다. 몸이 허락하면 정년이 지나도 계속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다. 한 70세 넘으면 하지 않을까 싶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