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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앞날을 향해 오늘도 달린다
  • 년도2018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이강천
  • 조회수766

   승승장구!!

  1983년 서울 천호동에서 부속가계를 운영하던 중 중학교 동창과 동업으로 인테리어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88서울올림픽 선수촌아파트 근처에 매장을 오픈하여 그 당시 유행하던 “베란다 구조변경”을 주 업종으로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여 그야말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당시 인테리어계통을 몰랐기에 친구는 기술과 영업을, 자본은 내가 대는 조건으로 친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친구가 모든 것을 처분해 야반도주를 하였고 하루아침에 친구도, 돈도 잃은 나는 망연자실하여 주저앉게 되어 눈앞이 캄캄했지만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지난 일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친구가 원망스러웠고 모든 걸 친구한테 맡겼던 내 자신까지도 용서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주저앉아만 있을 때 친구와 동업하며 어깨너머로 조금씩 배운 것을 경험삼아 건설업에 종사하는 친척의 도움으로 아파트 입주민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경험부족으로 입주자들로부터 항의전화가 오고 변상까지 해주는 일들이 반복되었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하자보수를 철저히 해주다 보니 고객들이 하나둘 늘고 지인들까지 소개해 주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이에 힘을 얻어 한 지역에서만 일을 하는 것 보다 전국 곳곳에 분양하는 아파트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전국 아파트 입주현황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였다.

 

   서울, 대구, 부산을 비롯해 웬만한 큰 도시는 다 다녔고 지도 끝이라고 볼 수 있는 거제도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사업은 어느 정도 안착하여 정상궤도를 달리고 지갑도 채워지는데 객지로 혼자 다니다보니 쓸데없는 짓을 하게 되었다.

 

  시간도 많고,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지갑 속에는 돈도 있겠다, 매일 밤 술집을 돌아다니며 도박판에도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사업은 뒷전이고 술과 도박에 빠지다보니 그동안 벌어 놓았던 돈도 탕진하고 몸도 망가져 거울 속에 보이는 초라한 내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집사람과 매일같이 싸우다 보니 서로 지치게 되었고 내 잘못도 인정해서 갈라서기로 했다. 당시 내 생활이 어려워 집사람이 빚잔치를 어느 정도 해주긴 했지만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 후로 집사람과 연락도 하고 아들을 자주 만나기도 했지만 삶에 의욕도 없고 마음도 안정이 안 되어 허송세월을 보내는 중에 아는 후배가 회사를 확장하여 증평으로 이전하는데 관리책임자로 와서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여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증평에서 살게 되었다.

 

   일에 흥미를 느끼며 생활에 안정을 찾아 가는가 했는데 청천병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던 중 옷을 입다가 힘없이 주저앉게 되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일어나지 못하고 오른손과 입이 한 쪽으로 돌아갔고 한 순간에 ‘이러다가 식물인간이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쏟아졌다.

 

  방바닥을 간신히 기어서 핸드폰을 집어 들고 직원에게 연락하여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고, 직원이 비상라이트를 켜고 운전해 주어 서울에 있는 한방병원으로 달려갔다. 정밀검사를 한 결과 뇌출혈이었다.

 

  병원에서는 일찍 와서 큰 고비를 넘기게 돼서 다행이라 했다. 일주일 동안 치료를 받은 후에 퇴원하여 증평의 외곽지에 원룸을 얻어 요양생활을 하던 중 자활센터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자활센터는 무조건 들어가는 게 아니고 군청의 심사를 거쳐 통과되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기에 심사를 기다려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출근 후 내가 하는 일은 운전업무였으나 일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마음 한 구석에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자활급여에 대한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급여통장에 찍힌 금액은 내가 잘 나갈 때 하루치 술값도 안 되는 돈이었다.

 

  하지만 성치 않은 몸을 가진 나에게 일거리를 주고 급여를 준다는 것을 생각하면 값진 돈인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청소사업단의 운전에 회의를 느끼며 무의미하게 생활하는 내 자신을 생각하니 너무 한심한 생각이 들게 되었다.

 

  여러 날을 고민하다가 사무실 직원과 상담하면서 자활기업 창업에 대한 욕구가 생기게 되었고 성치 않은 몸으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생겼지만 팀원들이 힘을 합하고 역할분담을 하면 사업을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생겨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자활센터에서도 창업을 적극 도와줄테니 열심히 해보라고 하기에 2012년 5월말 공동대표 2명과 기초수급자 2명으로 구성된 “깨끗한세상”이라는 자활기업을 창업하였다.

 

  막상 창업하여 현장 일을 해보니 거래처 유지와 신규 거래처 확보가 만만치 않았고 직원들 월급날은 정말 빨리 돌아오는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이러다 병이 도지는 건 아닌지 하는 염려도 되고 내가 왜 자활기업을 해서 이런 고생을 사서할까...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몸도 사업도 망칠 것 같다’는 생각에 대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입주청소를 병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서 지역에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정문에서 영업활동을 시작했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눈, 비가 내려도 주말을 반납하고 전단지를 돌렸다. 전화벨이 울려댔고 아파트 입주청소 오더를 하나하나 따낼 때마다 힘이 절로 났다.

 

  286세대 중 입주청소 85세대를 미리 계약하게 되었고 입주가 시작되자 깨끗하게 잘 해준다는 소문에 53세대와 추가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구성원 모두가 주말을 반납하고 오전에는 아침 일찍부터 기존 거래처에서, 오후에는 입주청소 현장으로 이동해 2세대를 마치고 나면 저녁8시를 넘기기가 일쑤였다.

 

  입주청소 서비스를 받았던 분들의 소개 덕분에 월 5~7 세대 입주청소를 하고 있다. 기업의 매출이 상승하면서 자활센터에서 지원 받고 있던 한시적인건비를 중단하기도 했다.

 

   충북광역자활센터의 사회적 기업에 관한 교육을 듣게 되었다. ‘사람과 경제’에 근무하는 직원이 사업장을 방문해 세부교육을 진행해 주어 전 직원이 함께 5회에 걸쳐서 교육을 받게 되었으며, 만장일치로 충북형사회적기업에 신청서를 제출하여 심사를 거쳐 2014년 11월에 (주)크린웰이라는 법인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을 3분2 이상 고용하고 사회기여 활동도 해야 한다. 학교청소가 잠깐 짬을 낼 수 있는 방학기간을 이용해 연 3~4회씩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복지관에 정기적인 기부도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돕는 “증평군민장학회”에 장학금으로 100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예비 사회적기업” 심사에 통과되어 “일자리창출” 지정서를 받았다. 현재 직원은 초창기보다 2명을 더 채용하여 장애인 2명, 기초수급자 1명, 고령자 2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아침 7시부터 상가 청소를 시작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고 보람되게 생활하고 있다.

 

  기업대표인 나는 국가의 도움을 받는 기초수급자였으나 이제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립하게 되었다.

 

   앞으로 입주청소 전담팀과 학교청소팀을 구분하여 전문적이고 고객의 만족을 이끌어 내는 청소업체로 자리매김하여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튼실한 기업으로 성장하길 소망한다. 어려울 때 받았던 도움을 이제는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한다. 힘들었던 길을 먼저 걸어온 사람으로서 지금 힘겨운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 자립의 꿈을 심어주는 사례로 그들 앞에서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도 하고 싶다.

 

   “지금 힘들다 해도 포기하지 말고 함께 달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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