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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이젠 행복하잖아
  • 년도2018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이순옥
  • 조회수752

   큰 아이가 고등학교 2학년, 작은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크진 않았지만 시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를 물려받아 남편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별 다른 어려움이 없는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불행은 예고 없이 다가왔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낯선 사업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기를 당했고, 밤낮으로 빚쟁이들의 독촉에 시달리던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저와 두 아이만 남았습니다. 집과 가게를 정리해서 빌린 돈을 갚았지만 전부 해결이 되지 않아 개인회생 신청을 했습니다. 저와 두 아이의 손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집이었는데, 지인의 소개로 철거 예정 지역에 있는 빈집을 월 10만 원에 힘겹게 빌렸습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쥐와 바퀴벌레가 우글거리고 화장실도 쓸 수 없는 폐가와 다름없는 집이었지만 살아 내야 했습니다. 그런 집으로 찾아오는 빚쟁이들에게 고개를 떨어뜨리면서도 참으로 야속했다 여겼습니다.

 

   이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동네 반장님이 동사무소에 찾아가보라고 했습니다. 못사는 사람을 도와주는 제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사무소를 찾아가 사회복지사 앞에서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행방을 알 수 없는 아이들 아빠가 주민등록등본 상에 버젓이 있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반장님이 사회복지사의 팔을 잡고 집으로 직접 찾아왔습니다. ‘실사’라고 했습니다.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운 참담한 광경 덕분에 얼마 후 기초생활

수급자로 등록이 되었고, 방도 하나 구해 주었습니다. 옥상 위에 있는 가건물이라 여름과 겨울을 지내기가 어렵긴 했지만 공동화장실을 가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두 아이는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결혼 후 집안에서 살림만 했던 저는 특별한 기술이 없었습니다. 매일 식당으로 나가 일당을 받으며 생활을 꾸렸습니다. 평일에는 12시간을 근무하고, 주말에는 조금 더 얹어 주는 돈에 무거운 몸을 또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주름진 살림에는 좀처럼 빛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즈음 사회복지사의 소개로 저소득층 주민에게 일자리를 찾아주는 대구희망리본본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습니다. 1개월의 교육을 받고 음료수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4일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힘든 일은 기꺼이 감당할 수 있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이유로 일반 근로자로부터 차별을 당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희망리본본부에서 한 곳을 더 소개해 주었고, 그 곳이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행복하계’입니다. ‘행복하계’는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장애인 등을 위한 대구광역자활센터에서 만든 닭고기 전처리 사업장이었습니다.

 

  닭 비린내는 심했지만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 곳이니 텃세는 없을 거라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는데, 문을 연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아 일을 할 수 있는 물량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을 하다 말고 집에 가 버리는 사람, 술을 마시며 일하는 사람, 시간만 때우면 월급이 나오니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아프다고 하면서도 아픈 곳을 치료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주변의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라도 빨리 수급자에서 탈피하기 위해 열심히 닭을 손질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광역자활센터에서는 희망키움통장을 권유했습니다. 월 10만 원씩을 넣으면 3년 후에 목돈을 타는 것과 함께 수급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내려는 마음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신청을 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도 대부분 가입했지만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끼니를 걱정하는 마당에 월 10만 원을 꾸준히 납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매월 들어가는 두 아이의 학원비와 생활비에 빚까지 갚아야 했기 때문에 10만 원의 유혹이 작지는 않았습니다. 큰아이는 대학에 입학한 후로 장학금을 받고 있지만, 작은아이는 어릴 때부터 언어 장애가 있어 장래희망으로 춤을 추고 싶어 했기 때문에 학원비가 더욱 많이 들었습니다.

 

   한 달, 두 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에 감사해 하며 악착같이 버텼습니다.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지만 희망키움통장의 3년 기한을 다 채우기도 전에 작은 아이가 대학에 가야 했고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그런 나에게 작은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부자 아니잖아. 어떻게 나까지 대학에 가겠어? 그냥 포기할게.”

  “엄마가 미안해.”

   그때 ‘행복하계’가 은혜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행복하계에는 직원과 조합원에게 지급하는 행복장려금의 일부를 적립해서 필요한 때에 대출을 해 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대출을 받고, 퇴직금을 중간정산해서 무사히 등록금을 냈습니다.

 

  금방 2학기가 되어 다시 등록금을 내야 할 때에 맞춰 드디어 희망키움통장도 3년을 채웠습니다. 매월 10만 원씩 모은 돈이 2천만 원이 넘는 큰돈이 되어 손에 쥐어졌습니다. 작은아이의 매학기 등록금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작은아이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방값이며, 생활비를 대는 일이 힘들긴 하지만 지나온 시간과 비교하면 행복한 비명인 것 같습니다. 작은아이도 학교생활을 하는 짬짬이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호주 유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엄마를 부끄럽게 만드는 기특한 딸입니다.

 

   하루, 하루가 모여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나에게는 입사 1년 후에 현장 반장이라는 직책이 주어졌고, 마을기업으로 시작했던 행복하계는 만 3년 뒤에 협동조합이 되었습니다. 협동조합으로 바뀐 뒤에 회사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일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던 사람들이 일 욕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야간근무, 주말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모든 구성원이 저마다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지금은 본사의 매출 하락으로 인해 행복하계에 주어지는 물량이 줄긴했지만, 꾸준히 본사와 접촉하여 다른 곳의 일도 가져올 수 있도록 청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곧 행복하계의 매출이 오를 것으로 기대가됩니다.

 

   주 5일을 근무하는 행복하계의 조합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지역 동사무소와 연계해 지역 장애인과 독거노인 집으로 찾아가 청소를 해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은 조합원들이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이제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을 살피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 삼삼오오 수다를 떨 때면,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다는 기쁨이 힘든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만 5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행복하계 협동조합의 상임이사가 되었습니다. 5년 전에도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행복하계를 통해 새롭게 선물 받았습니다.

 

  경제적 자립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자활(自活)’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현재 행복하계 협동조합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과 같은 아픔을 가지고 찾아올지도 모르는 모든 분들이 저와 같은 행복을 맛보았으면 합니다.

 

  저의 삶이자 꿈이 되어 버린 협동조합 행복하계, 조합원으로서 앞으로 독립적인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키우는 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그 동안 도움을 받은 고마운 분들께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표를 이루어 내기 위해 오늘도 비린내가 진동하는 현장에서 웃으면서 닭고기를 손질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개인회생으로 진 빚을 마저 갚아야 하고, 두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안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매번 긍정적으로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바닥까지 떨어져 봤으니 앞으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 없던 기운이 저절로 생깁니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일과 앞으로 닥쳐올 좋은 일을 생각하느라 지난날의 아픔을 돌이킬 시간이 없습니다.

 

  빠른 감이 있긴 하지만 여기까지 참고 달려온 스스로에게 위로와 칭찬을 해 주고 싶습니다.

 

   “순옥아, 참 잘 했어. 괜찮아, 이 정도면 행복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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