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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품은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 년도2018
  • 기관명부산사하지역자활센터
  • 제출자이광민
  • 조회수809

  아침 일찍 “아빠, 다녀오세요.” 이제 5살 된 아이의 인사를 받으며 집을 나왔다. 그런데 갈 곳이 없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

“가게”

“알았다. 갈 게”

 

  김해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을 보며 버스 창에 낀 서리 뒤로 보이는 앙상한 가로수와 그 뒤에 펼쳐진 들판을 바라봤다. 딱 나의 모습이었다.

 

“친구야, 오늘 애 생일인데 돈 좀 빌려주라.”

 

  내 목적은 친구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문방구에서 아이 생일선물로 머리핀이랑 빗을 사서 집에 갔다. 다행히 부모님이 준비한 조그만 케이크를 놓고 생일노래를 부르며 문방구에서 사 온 머리핀이랑 빗을 주는데, 아이는 좋아라 웃는다.

 

  그날 밤 아무것도 모르고 고이 자는 아이 옆에서 어두컴컴한 천장을 보며 그냥 울었다. 번듯한 대학 나와서 들어가기 힘들다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밤에는 학원도 운영하고,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도 성공한 놈이라며 부러움을 받고 지냈는데 일장춘몽이었다.

 

  나야 어떻게든 지내겠지만 아빠의 헛된 욕심으로 이혼가정의 아픔을 겪어야하는 아이를 생각하니 지난날에 대한 후회로, 앞으로의 두려움으로 그냥 눈물이 흘렀다.

 

“내 삼십대 초반”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재혼을 하였다. 한 번의 사업실패 굴레는 쉽게 벗어나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는 내 여자와 양아들, 그리고 늦둥이를 위해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고 있었다.

 

 

2011년 7월 28일

  구청에서 아내에게 전화가 왔는데 수급자가 될 것 같다고 한다. ‘휴~, 다행이다.’ 한편으로는 씁쓸하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거의 한 달 동안 노심초사 했었다. 능력이 안 되어, 가족도 못 먹이니 국가가 그래도 가족 입에 풀칠을 하게 해 주겠다는 그 확인을 받을지, 못 받을지 노심초사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초라해 보였다.

 

  그날 저녁 컴퓨터에 앉아 수급자 지원을 검색하다가 자활공동체 창업을 알게 되었다.

 

“현아야, 내 자활공동체 창업하면 안 되겠나?”

 

  늦둥이에게 젖을 물리던 아내가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활센터에 전화를 하고 수급자증명서를 가지고 찾아가 자활공동체 창업에 대해 물었다. 창업은 가능하지만 자활센터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와 다시 상의하고 심사숙고했다.

 

 

2011년 11월 1일

  80만 원의 수당으로 생활하기는 힘들었지만 일어서는 모습을 기다리며 인내하겠다는 아내의 의지 때문에 부산사하지역자활센터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인테리어였기에 집수리사업단에 가겠다고 하여 ‘참존인테리어’ 집수리사업단에 참여를 하였다. 2012년 1월 1일이었다.

 

  낮엔 현장에서 일하고 저녁엔 타일학원을 다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가운 바람이 몸을 움추려 들게 하였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가족들이 자고 있었다. 옹기종기 자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아빠, 잘 할게’라고 다짐을 했다.

 

   참여자들과 어울리며 그렇게 나는 자활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自活’, 내 능력이 안 되니 국가가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주고, 그것도 불안해서 능력이 쌓일 때까지 물고기를 몰아주고, 낚는 연습도 시켜주고, 능력이 쌓이면 이제 나의 힘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나가란다.

 

  하지만 나에게 자활센터는 직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사고의 폭도 좁아지고 친구들도 멀어지고 있었다. 가족들은 궁핍한 생활에 힘들어 하고 아내와의 불화도 생기기 시작했다.

 

“아,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한 것인가...”

 

   후회를 하고 갈등을 하면 화를 낸 아내가 자신이 미안하다며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런 반복된 갈등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 희망을 가지고 흘리는 땀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

 

  드디어 1년의 자활생활을 끝내며 ‘人&IN 인테리어’ 자활공동체를 창업했다. 사람이 많이 들어와서 같이 해보자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었다. 자활공동체를 창업하면 로또를 맞은 것처럼 잘되리라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집수리사업단에 참여하기 전에 인테리어회사에 잠깐 근무한 적도 있고, 1년 넘게 인테리어 직업훈련도 받았지만 공사를 따고 수익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같이 공동창업 했던 형과도 사이가 안 좋아지고, 추운 겨울에 열심히 일했는데 수익은 나지 않고 빚만 늘어갔다. 일이 없어 텅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계획을 잡아도 모든 일들이 공염불처럼 보였다. 6개월 동안 인건비 지원을 받았지만, 관리비며 거래처에서 오는 전화는 돈 달라는 것뿐이었고, 미안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면서 넘어가곤 했다.

 

  결국 아내가 폭발을 했다. 아이 학교에서 가는 체험학습비가 없다며 우는데 이제는 내 뜻을 접어야할 것 같았다.

 

‘그렇지, 3개월이나 일을 못해 놀았는데...’친구들도 이제 내 전화를 받으면 먼저 돈이 없다며 때려치우라 하고 전화를 끊어 버린다.

    

 

2013년 8월

  벼룩시장의 타일가게 보조 구인 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다. 면접을 본 후 일당을 받기로 하고 타일가게에서 매일 시멘트와 모레를 지는 일을 했다.

  엄청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타일과 돌을 나르고 돌아오면 온 몸이 빗물에 땀과 흙이 뒤범벅되었지만 그래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어느 날 타일가게 사장이 갑자기 자기와 동업을 하자는 제의를 했다. 아내도 자활공동체를 그만하라고 했기에 공동대표인 형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제 자활공동체를 못하겠다고 했다. 돌아오면서 왠지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날은 아내랑 둘이서 허무함과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소주를 마셨다. 타일가게에서 일을 하는데 예전부터 팔이 안 좋았던 동업자가 그만둔다고 하여 다시 자활공동체로 돌아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서류를 정리하며 다음날을 준비하면서 바쁘게 살았다.

   ‘人&IN 인테리어’ 자활공동체가 창업한 지 1년이 지나니 그래도 거래처에 줄 돈은 다 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다음해의 계획을 잡았다. 계획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보이는 것을 잡아야 하지만 내가 잡는 계획은 열심히 팠는데 그 끝이 벽으로 막힌 곳인지 아니면 밖과 연결되는 곳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터널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가능성이 높은 곳부터 파기 시작했다. 에너지효율개선사업 시공업체가 되기 위해서는 시공실적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없었다. 혹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택에너지진단사 자격증을 따서 기회를 잡기로 했다. 추운 겨울 2박3일 교육을 받고 시험을 쳐 자격증을 땄다.

 

  에너지효율개선사업 시공업체 모집공고를 보고 처음으로 ‘人&IN인테리어’ 상호로 신청서류를 넣은 후 시공업체 선정 발표 날까지 거의 한 달 동안 매일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드디어 시공업체 선정 공지사항이 떴다.

 

‘부산 사하지역 - ‘人&IN 인테리어’

“YES. YES."

 

  가슴이 뛰고 있었다. 뭔가를 이루었다는 기쁨에 낚인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휴~ 살았다’는 안도감.

 

   자활공동체를 창업하였으나 이제는 자활기업으로 불린다. 처음에는 자활기업 보다는 자활공동체가 입에 붙어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 나 역시도 자활기업 ‘人&IN 인테리어’ 대표라고 소개를 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

 

  5년이 되어 간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졌다. 나를 믿고 나와 같이 땀 흘리는 형들이 있고, 이 형들 또한 자신들이 이루고 싶은 꿈을 나에게 이야기 한다. 그러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조언을 해 준다. 일이 많아서 사람들이 북적이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임금을 줄때 “고마워” 하는 소리를 들으면 ‘이 돈으로 가족이 생활하고 나 또한 이 사람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몇 달 전,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다가 농담으로 친구 한 녀석이 ‘다음에 셋이서 자서전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물려주자‘는 제안을 했다. ‘너희들은 교수고 기자니 자서전을 써도 자랑스럽겠지만 나는...’ 좀 많이 씁쓸했다.

 

  자활기업 ‘人&IN 인테리어’도 나도 아직은 미생(未生)이다. ‘그래, 어느 누가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완생(完生)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누가 있으랴!

 

  나는 오늘도 미생(未生)을 완생(完生)으로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리고, 저녁에는 새로운 ‘人&IN인테리어'를 준비하기 위해 계획하고 설계를 한다. 이루지 못할 완생(完生) 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희망을 품고 땀을 흘려야 나로 인해 주위의 사람들이 더 좋아질 수 있으니 이 또한 보람된 땀이 아닌가!

 

  오늘도 나는 노가다가 아닌 꿈을 품은 땀을 흘리러 간다.

 

“그래! 꿈을 품은 땀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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