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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키움이 탈수급의 희망을!
  • 년도2018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박준혁
  • 조회수943

   “과연 나에게 온전한 자활이 있을 수 있을까?, 탈 수급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혼자였다면 포기하고 쓰러질 수 있었겠지만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하며 인내해 온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은 탈 수급하여 일반인으로 당당히 설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15톤 덤프트럭 운전을 하며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함 없이 지내오던 나에게 우리나라에 닥친 IMF는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할인받은 어음을 막을 수 없게 되면서 결국 할부로 산 트럭까지 팔게 되었고, 생활비가 없어 사용한 카드빚은 제 목줄을 조여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습니다.

 

  성실히 살아온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원망스러워 3개월 동안 방안에 쳐 박혀 술로 시간을 보내며 점차 폐인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압구정에서 6개월 정도 포장마차를 하게 되었는데 어려운 나의 형편을 위해 도움을 주시는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던 그분은 다단계에 빠져 있었고, 함께 어울리다보니 나도 다단계에 빠져 온 재산을 탕진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가족들과 살아야했기에 보험회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금융교육을 받으면서 알게 된 재정 관리는 성실하기만 해서는 안 되며 적절하고 안전하게 자금을 관리해야한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실적이 좋아서 한 달에 천만 원이 넘은 돈을 몇 차례 벌기도 했지만 통장에 들어오자 5분도 안되어 다 출금되었기에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습니다.

 

  결국은 2억 원 가까운 돈을 해결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우리 부부는 파산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조그만 집까지 먼지처럼 사라져 온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IMF 때 트럭을 팔면서 이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더한 지옥을 체험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보험회사에서 일할 때 주로 강남에 고객들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뭔가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지인들에게 빌린 돈으로 작은 월세 방을 얻어 온 가족이 청담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막상 가족에 대한 책임과 끼니를 때우기 위해 주차관리 일을 하게 되었으나 그때까지도 수급자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생활을 하던 중 구청에 일이 있어 전화를 했다가 힘든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사회복지담당이 직접 집으로 방문해 조사해 가면서 국가의 도움을 받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중학생 자녀 2명을 키우며 월세 70만 원을 감당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주민센터의 도움으로 LH매입 임대주택도 신청 하였습니다. 이사할 임대주택의 월세는 30여만 원으로 현재보다 저렴하고 좋았기에 지하의 퀴퀴한 곰팡이와 눅눅함에 힘들어 했던 우리 가족은 마치 당장이라도 이사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집을 구경하고 나서 밤잠도 못자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발표가 났을 때는 점수가 부족해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하고 맘이 아프던지 어떻게 해서든 가족을 위해 지금 보다는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간호조무사 일을 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쉬고 있던 아내도 청담동에서 근로유지형 자활사업에 참여했고, 나는 주차일을 하며 어렵지만 악착같이 10만원 씩을 청약저축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고생한 보람으로 다음 신청 때 1순위가 되어 논현동의 매입 임대주택에 들어가게 되었고, 주택자체에 문제가 있어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지금 거주하는 대치동 빌라로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건강상태가 더 나빠져 일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내가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도에 강남자활센터에 처음 참여하게 되었는데, 파견사업에 참여하여 10개월 정도 일식집에서 일을 하다가 제대로 된 일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 2010년에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이와 학벌 때문에 번번이 고배를 마시게 되면서 2012년에 다시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참여했던 사업이 장애아동특수교육보조원사업으로 장애아동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식사, 일반생활, 화장실 케어 등을 보조하는 일이었습니다.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일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학교에서도 인정을 해주어 당시 파견되어 일하던 밀알학교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나 최종 선택에서 중졸의 학벌이 걸림돌이 되어 모든 선생님들께 인정을 받으면서도 탈락의 고배를 또 마시게 되었습니다.

 

   형편상 학업을 지속하지 못해 학벌이 낮았던 것이 뼈아픈 후회가 되어 자활사업에 참여하면서 2014년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신청하여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자활사업에 참여하면서 퇴근 후 주중에 공부를 하고 주말에 가끔 학교에 출석하여 공부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늦은 나이에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보니 벅찬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지금은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2013년 5월 희망키움통장을 소개 받아 가입한 후 2016년 5월에 탈 수급하기까지 어려운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구청 희망키움담당자의 자상한 안내와 성실한 동기부여가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완전 탈 수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구청 담당에게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2015년 3월 강남의 일반학교 장애학생 학습도우미로 취업을 하였으나 예산부족으로 12월에 퇴사하였습니다. 다시 2016년 초 어려움이 생겨 잠시 자활사업에 다시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2016년 7월 탈 수급이 되어 일반인이 되던 날 온 가족이 울며 기쁨으로 파티를 하였습니다.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로 어려움을 겪으며 국가의 도움을 받을 때는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 많았었는데, 그 힘든 시기를 온 가족이 함께 잘 극복하여 완전 탈 수급한 지금이 제 자신에게 얼마나 떳떳한지 모릅니다.

 

   국가에 가장 고마운 것은 두 자녀가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등록금을 지원해 준 것입니다. 자활하고자 했던 온 가족의 염원대로 희망키움통장 만기 후 큰아들은 1년 동안 공부하던 경찰시험에 합격하였고, 올해 대학교를 졸업한 둘째 아들은 애니메이션 학원 강사로 출근하며 자기역할을 잘 감당하는 사람들로 서게 되었습니다.

 

  나는 3월에 다시 일반 식당에서 주차요원 일을 하고 있으며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나처럼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대가를 치러서라도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고 극복하는 법을 알려주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습니다.

 

  힘든 시기에 국가가 나를 도와준 것처럼 이젠 내가 국가에 진 빚을 갚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희망키움통장을 통해 완전한 탈 수급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계획을 세워 탈 수급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모델이 되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내 아들이 안동 기숙학원에서 준비하던 경찰공부 자료들도 또 다른 자활을 꿈꾸며 함께 일하는 자활참여자의 아들에게 모두 넘겨주었습니다.

 

   10등급의 신용은 현재 1등급의 신용이 되었습니다. 한 번 신용불량자가 되어 어려움을 겪고 보니 이 사회에서 신용이라는 것이, 또한 내가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신용을 절대 만만히 볼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파산 이후 월세 한 번 밀린 적 없고 내야할 공과금 한 번 늦게 낸 적이 없습니다.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미래를 생각하며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구매하여 차비를 아꼈고 왠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습니다. 나는 현재 6시부터 9시까지 주차요원을 하고, 9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대리운전을 합니다. 그 시간에 들어와서 눈을 붙이고 오후 2시에 일어나 1시간 이상 대학 강의를 듣고 밥을 먹은 후 주차요원으로 출근합니다.

 

  비록 남들이 사는 삶과 다르지만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제 마인드는 “푼돈을 아끼자”입니다. 대리운전하며 1km정도의 거리는 걸어 다니고 집에 오기까지 아무리 많이 써도 하루 8천 원 이상을 차비로 쓰지 않으며 그날그날 번 돈은 매일 은행에 입금합니다.

 

  지갑엔 대리운전에 필요한 잔돈으로 3만 원 정도만 넣어 다니며 모든 지출은 체크카드를 사용합니다. 담배는 완전한 금연 중이고 술도 거의 하지 않고 돈을 모읍니다. 이런 각고의 노력이 없이 돈을 모으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철저하리만큼 아끼는 삶을 살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 가정의 신조는 ‘첫째도 신용, 둘째도 신용’입니다.

 

   탈 수급 후 우리 가정에 가장 급한 일은 주거문제입니다. 감사하게도 계약기간이 2년이나 남아 경찰이 된 아들과 학원 강사 아들은 한 달에 매월 150만 원씩, 나는 200만 원씩을 저축하기로 가족이 함께 합심해서 할당 금액을 정했습니다.

 

  청약저축으로 천만 원이 좀 넘게 저축되어 있고 희망키움통장으로 집보증금으로 4,000만 원 정도가 있으며, 온 가족이 똘똘 뭉쳐 일하여 2년 후에는 1억 정도의 돈을 모아 공공임대나 장기전세로 이사할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참여자들이 몸이 아프다 하더라도 정신만 건강하다면 충분히 탈 수급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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