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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분메!! 홧팅!!
  • 년도2018
  • 기관명부천나눔지역자활센터
  • 제출자송문숙
  • 조회수779

  내 나이 26살, 그 시절에는 그리 빠르지 않은 나이에 결혼하고 세 명의 아이를 두었다.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남편은 사업을 하며 나의 명의로 카드를 만들어 사용하며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잇따른 사업 실패로 빚쟁이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막내가 3살인 98년부터 별거를 하게 되었고, 세 아이를 독신인 언니에게 맡겨놓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식당서빙, 공장생산아르바이트, 의류판매 등 일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보고자 하다. 그러나 설상가상 별거한 남편은 사고를 당해 장애 3급이 되었고, 급기야 수급자가 되는 인생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부모의 시끄러운 세상살이에도 불구하고 세 아이들은 쑥쑥 자랐고 어려운 가정형편에 남들 다 가는 보습학원 한 번 제로 보내지 못했지만, 큰딸은 제힘으로 명문인 고려학교에 입학하고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유학을 가는 수재로 성장했다.

 

  그래도 아빠라고 폐인이 다 되어 가족을 몰라라 하는 별거 중인 남편과 몰래 만나고, 힘들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아빠에게 용돈으로 주고 오는 착한 아이들만이 삶을 놓아 버리고만 싶은 내 약한 마음을 지탱해 주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 줄이었다.

 

  세 아이에게 결손가정의 애비 없는 자식들이라는 오명을 주고 싶지 않아 긴 시간을 별거하며 혼자 울며 뛰며 버텨왔건만....무심한 남편은 사업하는 친구에게 명의까지 빌려주어 엄청난 빚을 지고 몰려오는 빚쟁이를 감당할 수 없어... 끝내... 2013년에 이혼을 하고 말았다.

 

  긴 별거 생활 중에도 남편이라고 그래도 의지하여 왔는지...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니 정신도 몸도 끝없는 나락으로 빨려 들어갔다.

 

  세상의 모든 불행은 나에게만 오는가? 언제나 밝고 씩씩하여 분위기메이커란 소리를 들어왔던 나인데,, 수급자에 세 아이가 딸린 이혼녀라니...밤에 잠도 오지 않고 우울증에 시달렸고, 그 동안 물불 안 가리고 몸을 혹사시켜서 인지 허리, 어깨 등 안 아픈 곳이 없었다.

 

  2013년 5월 어깨부상으로 회전근개 파열 수술을 하고 나서는 자활 일조차 할 수 없었다. 몸도 마음도 가정도 모두가 엉망진창...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만 하나...너무나 막막했다.

 

  그러던 중 예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를 통해 부천나눔자활센터를 만나게 되었고 주민센터 사회복지사, 시청 자립지원상담사와의 상담과정에서 자활근로를 하면 얻을 수 있는 큰 혜택인 ʻʻ내일키움통장ˮ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활근로를 성실히 하고 3년 만기 전 에 취업이나 창업을 하면 내일키움수익금과 장려금 등을 포함하여 평균 1,300만 원이라는 목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곧 나의 실오라기 희망인 세 아이 중 막내가 대학입학 할 때가 되는데, ʻ그 돈이면 그래도 엄마로서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ʼ는 생각에 자활근로 에 열심히 참여해 봐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2013년 6월부터 참여한 부천나눔지역자활센터의 게이트과정에서 자존감 향상 교육, 웃음치료, 화법과 관계 형성, 생애진로설계 등 다양한 교육으로 한겹 한겹 늪에 빠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또 다른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간병, 아이누리보육, 생태공방 등 여러사업단의 견습을 성실한 자세로 임하여 최종적으로 2013년 9월,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의 적성에 맞는 ʻʻ생태공방사업단ˮ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같은 사업단 동료를 따라 2013년 연말, 부천나눔자활센터의 한부모자조모임의 송년 모임에 참여하게 되어 혼자서 자녀를 키우는 같은 상황의 한부모들의 모임인 ʻʻ참부모모임ˮ에 가입 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서로서로 힘든 점을 하소연하고 선배(?)의 코칭도 받으며 생활하는 사이 혼자 덩그러니 버려진 것만 같은 이 세상에 나를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가 있음에 위안을 받으며, 마음을 굳게 먹고 아이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댄스동아리활동, 숲탐방, 문화공연관람 등의 활동으로 몸과 마음이 차츰 좋아졌고, 자활공제조합 댄스공연, 송년의 밤 댄스공연, 요양원봉사활동공연 등 다양한 행사에서 공연발표를 하는 사이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하던 원래 예전의 명랑한 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자활 사업에 참여하면서 소양교육, 직능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접했고 자활센터 팀장님이 연계해 주시는 전문상담사와의 상담을 통해 앞으로 노후를 위한 나의 전문적인 일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특히 내가 자활을 떠나 새로운 직업을 찾는데 팀장님과의 상담이 큰 힘이 되었다. 팀장님은 홀로 아이 세 명을 기르고 있는 내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며, 내가 새 길을 찾아가는데 큰 도움과 정보를 주었다. 그리고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용기와 확신을 주어 새로운 직업을 찾게 해 준 너무나 고마운 분이시다.

 

  자활사업을 떠나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팀장님의 도움을 받아 꼼꼼히 이력서를 작성하고, 모의면접을 보며 세상으로 나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워크넷 전산을 능숙하게 활용하기 위해 컴맹인 나에게 컴퓨터를 켜는 법부터 다그치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하나하나 도와주셨다.

 

  2015년 4월 15일 드디어 나는 베르누이 호텔에 메이드로 취업하며 자활을 떠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 여기저기 아픈 몸에 파스를 붙이고 살았고, 너무 힘들어서 다시 자활에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내 여생을 위해 참고 견디며 내 기술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센터장님과 팀장님은 하루가 멀다고 내가 잘 적응하는지 걱정해 주고 또 ʻʻ내일키움통장ˮ의 수령과 차상위로 ʻʻ희망키움통장2ˮ라는 상품에 가입하여 또 다시 희망을 계획하도록 도움을 주셨다.

 

  이제 자활은 떠났지만, 친정에 가는 듯 한부모모임의 모든 행사에 함께하여 친구들의 격려를 받고 또 외부환경에 한 정보도 줄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 내가 지금의 좋은 직장을 갖게 되고 잘 적응하게 된 것은 그동안의 많은 시행착오에도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준 센터장님과 팀장님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일에 많이 익숙해졌고, 내 평생의 일을 찾은 것 같은 뿌듯함으로 일을 하고 있다.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자활 사업을 통해 배운 용기와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자활 사업은 힘들었던 내 삶에 작은 안식처가 되었고, 앞으로 살아갈 길을 찾도록 큰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평생 함께 갈 인연들을 만들어 준 참 고마운 경험이 되었다.

 

  다시 한 번 분메(분위기메이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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