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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복..
  • 년도2018
  • 기관명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
  • 제출자박미혜
  • 조회수804

  저는 성민이 엄마 박미혜로 불릴 때 가장 행복합니다.

 

  지난 몇 년 나의 생활을 돌아보면 암흑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힘들었던 문제들이 하나둘 해결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가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에 다시 한 번 힘을 얻으며,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용기가 오늘의 저를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순탄치 않은 가정생활에 늘 불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일찍이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친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지만,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다 답답하고 불안한 시골생활이 지긋지긋하여 무작정 18세에 타지에 나와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낯선 타지생활이 외롭고 무서웠지만 나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공장, 식당 아르바이트 등 안 해본 일 없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환경과 외롭고 고달픈 하루하루에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탓인지 우울증과 강박증 등의 심리적 어려움이 생겼고, 특히, 하루에도 손을 20~30회씩 이상 씻는 청결 증후군까지 생겨 어디 한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며 정착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며 28살의 나이가 되던 때에 의지할 곳 없고 외로웠던 어두운 마음에 햇살같이 따뜻함으로 다가온 아이 아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경제적인 어려움과 가정환경으로 인해 결혼식을 하지 못하고 함께 살았지만, 행복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소박한 꿈과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서 함께 했던 1년 반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저의 우울증과 강박증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이러한 저의 우울증과 예민함 때문에 아이 아빠가 견디지 못하여 아이가 4개월 되었을 때 말없이 저를 떠나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아이 아빠의 가출과 아이 육아로 인해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어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으며, 월세를 낼 수도 없었기에 앞이 깜깜하습니다. 하지만 저를 보고 생글생글 웃는 아이의 미소에 삶을 포기할 수 없어 동주민센터에 요청하여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갈 때 없는 막막함 속에 동주민센터의 소개로 동두천 천사의 집에 입소하여 3년 정도 생활하고, 성민이가 4살 되던 해 기간이 만료되어 부천시에 있는 모자원 새소망빌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이와 함께 지낼 보금자리가 생겨 안도했지만, 보금자리를 옮겨 새로운 곳에서 적응한다는 것은 늘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작은 회사에 입사했지만, 이전보다 더욱 심해진 결벽증 때문에 3-4살 되는 아이를 바닥에 놓지 못하고 아기띠에 늘 엎고 다녔으며, 근무 시간이 너무 늦어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이가 울고 보채며 불안해하는 모습이 괴로워 직장생활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점점 심해지는 우울증과 결벽증 때문에 약을 복용해 보기도 하고 모자원에서 지원받아 심리 상담도 10회 이상 받았지만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린아이와 먹고 살아야 했기에 다시 직장을 알아보았지만, 기술이나 경험도 많지 않고 어린아이를 키우면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모자원의 소개로 부천소사지역자활센터에서 상담을 받게 되었으며, 여가지원사업단에서 자활근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단순 아르바이트만 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라고 고민하던 중 20에 취미로 배웠던 비즈공예 자격증이 사업을 참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가지원사업은 지역아동센터, 요양센터 등에 강사활동으로 공예프로그램을 지원하며, 수공예 제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사업단입니다. 처음에는 서툴고 자신도 없었지만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있었고, 관심이 있던 분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토탈공예 교육을 받고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선배들의 강사활동을 열심히 참관하여 사업에 참여한 지 반년 만에 강사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복지기관에 나가 공예수업을 하면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열심히 배우시고 만드시고, 만든 작품 예쁘다고 좋아해 주실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내가 좋아하는 수공예품도 만들고 강사활동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 우울함을 잊게 되고, 저녁엔 일찍 퇴근하여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 아이도 안정을 찾게 되면서 이런 게 행복이구나 하는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함께 일하는 여가지원사업단 동료들이 나와 같은 비슷한 상황에 있다 보니 친구처럼, 때론 친언니와 동생처럼 함께 이해해주고 마음의 짐을 한가지씩 내려놓는 방법을 알려주었기에 자활에 참여한 지 1년이 넘게 된 지금 우울증과 결벽증을 많이 극복하고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과 나의 직장생활 적응 등 생활이 안정되면서 앞으로 어떠한 꿈을 갖고 자립할지에 한 마음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ʻʻ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비즈오 리본아트분야로 창업을 해 볼까?ˮ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으나 혼자 해볼 자신도 없고 수입의 한계도 있을 것 같아 고민하던 중 일하는 동료들과 천연 향초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향초를 만들어 판매하고 새로운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함께 연구하며 일에 한 새로운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고, 이러한 성과로 올해 ʻ경기도자활생산품 품질평가원회ʼ에서『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경기도 판매자네트워크 착착착 모임에 여가지원사업단 표로 참석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다른 기관의 표들도 만나고 상품에 해 배우고 익히는 과정 가운데 자신감이 생기게 되어 자활기업창업에 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천에 처음 왔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지만 부천이라는 낯선 환경이 많은 분의 도움과 격려 속에 나에게 행운이 되었습니다. 부천 소사지역자활센터에서 여러 가지 수공예 관련 교육과 소양교육, 서비스교육 및 자산형성교육, 동료들과의 친감을 통해 박미혜 나 개인의 성장과 삶의 안정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새 소망 모자원과 아이 어린이집 적응을 통해 성민이가 어느덧 6살이 되어 씩씩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한없이 우울하고 어둡던 삶에 빛을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가는 지금은 성민이 엄마로서 홀로서기를 배우며 조금씩 행복을 찾아가는 중이랍니다.

 

  보통의 다른 워킹맘처럼 아침이면 일어나기 싫어하는 성민이를 깨워 어린이집에 보내고 서둘러 직장에 출근하는 평범한 일상이 저에게는 큰 행복입니다.

  앞으로 새롭게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꿈을 이루며 살고 싶습니다. 2~3년 후에 함께 꿈을 꾸는 사업단 동료들과 자활기업 창업이라는 꿈을 이루고자 오늘도 열심히 일하며 달리고 있습니다.

 

  꿈은 누구나 있겠지만, 꿈만 꾸면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위해 노력하는 자에겐 길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성민이 엄마 박미혜는 오늘도 열심히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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