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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싣고 달린다
  • 년도2016
  • 기관명부산진지역자활센터
  • 제출자이상희
  • 조회수2,020
*자활수기집 제13호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은상 '이상희 님'의 이야기 입니다.

희망을 싣고 달린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그러나 불행의 시작!
삶의 무게가 무거워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음을 느끼고 생의 끈을 놓으려고 할 때 지금 내 아이들의 아버지인 그를 만나게 되었다. 나의 부모님은 이혼 후 말도 없이 동생들과 내 곁을 떠나버렸고
나는 홀로 남은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에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유복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에 남편과 나는 열심히 일을 하였다.. 이때만큼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꿈이 있었고 희망을 보았다.

그러나 남편 친구와의 동업, 그리고 몇 번의 배신으로 인해 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났고 남편은 충격에 폐인이 되었다. 설상가상 사업자금으로 빌린 돈으로 인해 남편은 사기죄로 구속이 되어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쯤 첫째 아이가 태어났고, 태어난지 한 달도 안 된 딸아이의 출생신고와 남편과의 혼인신고를 홀로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절망스러웠으나 남편과 함께 열심히 일하여 빚을 갚아나갈 수 있다는 믿음에 남편의 출소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불행에서 절망으로...
하지만 남편은 출소 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갚아야 할 빚은 많은데 남편은 점점 더 한탕주의가 되었고 온라인게임에 빠져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으며 연락도 수시로 끊어버리곤 했다. 나는 시어머님의 식당에서 설거지를 돕고, 시누이의 아이를 돌봐주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동안 아이들과 나는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였고, 그것마저 지속할 수 없어 시누이의 배려로 거주지를 시누이 집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나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남편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점점 놓게 되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착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너무나 대견하고 또한 아이들이 있어 지금 내가 살아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돈이 필요할 때만 나를 찾아왔고 생활비로 쓰려던 돈마저 당연한 듯 가로채 갔다. 그때마다 이혼을 요구하였지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욕설과 무시뿐이었다.

다시 찾은 희망의 기운
연락조차 되지 않는 남편과의 이혼을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며 큰 딸은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고, 교육비 지원을 알아보던 중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사무소 상담 후
절차를 거쳐 2013년 6월 나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고 2013년 9월부터 부산진지역자활센터 커피사업단에서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아이들의 양육, 직업능력, 나이 등의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한 번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보지 못했던 나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기회였다. 부산진지역자활센터에서는 내가 처한 어려움을 같이 해결하기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고, 절망에 빠져 허덕이던 나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실어주었다.

그것을 발판삼아 나는 열심히 일하였고, 더 나아가 나의 안정된 미래를 설계하였다. 나는 막연하게 카페 창업을 희망하였으며 그것 으로 자립을 꿈꾸었다. 카페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내 적성에 잘 맞았고 어느 순간 재밌게 일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내 진로를 확정하였다.
카페 일에 적응할 때쯤 나는 부산진지역자활센터의 지원으로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더욱더 카페 일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또 한 번 찾아온 시련을 기회로 탈바꿈하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을 순조롭게 지내오던 어느 날 한 통의 우편물로 나는 다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법원으로부터 감치명령서가 날아온 것이다. 그동안 카페에서 꾸준히 일을 하였지만 80만
원이 조금 넘는 급여로 두 아이를 양육하며 빚을 갚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동안 채권자로부터 독촉물, 전화, 문자 등을 받아왔지만 지금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급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문제가 다른 듯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부산진지역자활센터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나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 결과 부산진구청 무료법률상담을 이용하여 해결방법을 문의하고 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더 이상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피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해결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이것은 내가 앞으로 창업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금융 ․신용에 관한 문제였다. 남편의 사업자금으로 인한 부채가 여기저기 많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남편이 내 명의로 대출을 받아 내가 알지 못하는 빚도 어마어마했다. 솔직히 그동안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는 문제들을 다시 끌어올려 내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 자체가 무섭고 두려웠다. 당시에는 ʻ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ʼ라는 말이 내 심정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를 위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나는 두렵지만 꼭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자활센터 사례
관리 선생님의 소개로 부산광역시 지원으로 2015년 5월 설립된 서민을 위한 ʻ희망금융복지지원센터ʼ(부산광역자활센터 운영)를 통해 담당자와 김◯◯ 자원봉사자 선생님의 도움으로 파산 절차 및 면책에 대해 몇 개월에 걸쳐 진행하게 되었다. 오래된 금융 자료들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으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 들었으나, 그때마다 지금보다 더 어렵게 지냈던 날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법원에 접수가 끝난 상태이며 11월 중으로 파산 선고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안정된 주거지가 없었다. 올해 초 주민센터에 전세임대주택을 신청하여 10월 아이들과 내가 안정되게 지낼 수 있는 전셋집을 마련하였다. 이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지만 난 더
욕심을 내어 카페 창업 준비에 집중하였다. 카페 창업을 위해 필요한 자격증 취득 지원을 받아 ʻ카페 매니저ʼ, ʻ라떼 아트ʼ, ʻITQ엑셀ʼ 등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기회가 가져다준 기적!

나는 카페 창업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올해가 가기 전 창업을 목표로 담당 팀장님과 가게도 열심히 알아보았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지조건, 유동인구, 자금 등 모두 마음에 드는 곳은 찾을 수 없었으며 나는 다시 혼란스러웠다. 마음이 불안하고 잠시 멍하게 있을 때였다. 부산진지역자활센터로부터 ʻ부산시민공원 푸드트럭 영업자 모집공고ˮ를 접하게 되었다. 이것은 국민기초생활수급자와 청년실업자 등 취업 취약계층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부산시에서 최초로 진행하는 합법 푸드트럭 사업이다.

나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다. 사업자 선정은 공개 추첨으로 진행되었으며 총 6명이 지원하였다. 나는 첫 번째 추첨 대상자가 되었고 그래서인지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첫 번째로 추첨을 한 나에게 단 하나의 기회가 오게 된 것이다. 기쁨도 잠시 앞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선정되고 다음날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이제 시작이다
제일 첫 번째로 한 것이 부산진지역자활센터 선생님들과 경기도에 있는 푸드트럭 관련 전문업체에 견학을 다녀왔다. 견학 후 푸드트럭 컨셉을 정하고 부산으로 내려와 ʻ카페 푸드트럭ʼ 자활기업 신청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2015.10.15. 커피사업단을 종료하고 창업 준비에만 매달렸다. 휴게음식업 위생교육 수료, 보건증 발급, 푸드트럭 차량 구입, 메뉴 실습교육 등 9월부터 지금 현재까지 아주 바쁘게 지내왔다. 2015.10.29. 푸드트럭 개소식을 앞두고 나는 막바지 준비에 정신이 없었으며 부산진지역자활센터에서는 그런 나를 끝까지 잘 이끌어 주었다.

ʻ푸드트럭ʼ이 생소하기도 하고 창업을 하기까지 막연하기도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는 결국 2015.10.29. 카페 푸드트럭 개소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이로써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2년 동안 자활센터 커피사업단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제 홀로서기를 시작하려 한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도움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자신감과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후회 없이 도전해 볼 것을 다짐해본다. 처음에는 많이 부담스러웠던 언론사 그리고 많은 사람의 관심이 이제 부담스럽지만은 않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만큼, 도움을 주신 만큼 꼭 자활·자립에 성공하고자 한다. 나의 성공이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 까지는 아니지만, 또 다른 내 같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면 이보다 좋은게 더 있을까?
ʻ눈을 즈며시 감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행복감을 더 느끼게 한다.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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