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홍보

두 번째 이야기
  • 년도2015
  • 기관명경북광역자활센터
  • 제출자이현희
  • 조회수2,193
*자활수기집 제11호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선 '이현희 님'의 이야기 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나는 산악인도 아닌데 산을 찾아 다녔다. 전국에 산이란 산은 모두 뒤졌으나 내가 살만한 곳은 없었다. 동해안을 따라 울진에 작은 산 앞에 머물렀을 때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고 내가 살아야 할 곳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어느 날 무병에 걸렸다고 했다. 이유 없이 건강이 나빠져 더 이상 가정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되자 빈 손으로 집을 나와 여기저기 나를 치료해 줄 절을 찾아 다녔다. 2006년 어느 날 강화도에 있는 약사암에 머무르고 있을 때 내 마음을 치료해 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승려로 절에 머물렀지만 나와 마음이 잘 맞았고 우리는 절을 나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살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수중에 한 푼의 돈도 없었다. 식사도 거를 정도였고 밤이 되서 내 한 몸 편히 쉴 공간도 없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다가 2008년 3월 경북 울진에 작은 산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우리가 머물러야 할 곳임을 깨닫고 우리가 살 집을 찾아 보았다. 시골 동네라서 그런지 폐가가 꽤 많이 보였으나 손을 대기에는 너무나 낡아서 동네주민들의 양해를 얻어 며칠 찾아다닌 결과 지금의 집을 찾아 수리를 하여 우리의 보금자리가 생겼다. 이제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너무나 가진 게 없고 기반이 없던 터라 며칠을 고민하다가 군청에 가서 도움을 청해보기로 하였다. 군청에 주민생활지원과라고 팻말이 보이고 무언가 나를 도와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옛말로 영세민이 되었다. 창피하였지만 몇 년만 눈 꼭 감고 버티리라 다짐을 하였다. 또 귀농인을 도와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군청에 친환경 농정과에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우선 동네에 놀고 있는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였고 나는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면사무소에서 오후 3시까지 환경 정비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것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한 달에 고작 40여만원으로 언제 영세민에서 벗어날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였다. 그래서 나는 자활사업에 몇 달간 참여하다가 그만하고 조금 더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지역자활센터라는 곳에서 나를 청소하는 일을 소개해 주었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어려운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에 청소하는 일을 시작하였고 남편은 묵은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농업에 관련된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 부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2010년 면사무소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면 복지담당자로부터 ‘희망키움통장’이라는 것을 들었다. 평소 안정되면 꼭 저축을 시작하고자 다짐하였는데 이게 바로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세히 알아볼 겨를도 없이 신청서를 쓰고 매월 10만원을 저축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직 기반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매월 10만원을 저축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고 가입 후 처음 5개월간은 생활비가 한 푼도 남지 않아 납입을 하지 못했다. 그 후에는 저축을 먼저 하기로 다짐을 하고 매월 저축액부터 따로 떼놓아 저축을 먼저 하게 되었는데 울진에는 하나은행이 없어서 내가 얼마나 모았는지 통장으로 확인이 되지 않았다. 통장을 매달 찍어보면 혹시 급할 땐 그 돈이 생각날 텐데 울진에서는 통장을 찍어볼 수가 없어 없는 돈이라는 생각을 하였고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그동안 남편과 나는 틈틈이 ‘친환경 귀농인 정착교육’, ‘기계화영농사 양성과정’의 교육을 성실히 들어 기계화영농사 자격을 갖추게 되었고 ‘천연농약 전문강좌’도 이수하는 등 농업에 관련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관련분야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기 시작하였다.

2013년 8월 어느 날 한 통의 우편물이 집에 와있었다. 발신인은 울진군수 였는데 뜯어보니 그동안 모른 척 하고 넣고 있던 희망키움통장이 드디어 만기가 되어 찾아가라는 우편물 이였다.
2011년에 수급자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내가 넣은 돈은 고작 310만원인데 무려 5배나 많은 1700만원이 넘는 돈을 찾아가라는 것 이였다. 내가 울진에 정착해서 살게 된 지난 5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드디어 오랜 시련이 끝을 맺는구나 싶어 코끝이 찡해졌다. 마치 우편물이 돈이라도 되는 냥 누가 볼까 가슴에 안고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가서 다시 한 번 확인하였는데 역시 맞는 것 이였다. 그런데 아무리 눈 씻고 봐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310만원을 저축하였는데 5배나 더 준다. 평소에 농담으로 로또 맞았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진짜 로또를 맞은 것이다.

이제 이 돈을 찾아서 남편과 내가 정부와 울진군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어떻게 돌려줘야 되나 고민한 결과 우선 돈을 찾아서 농사를 짓기 위해 내 토지를 마련하기로 하였다. 내 토지에 그 동안 배운 농업기술로 약초를 재배하여 울진군민에게 좋은 먹거리로 보답하고 또한 우리처럼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귀농한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시작하여 미래에는 아직은 막연하지만 이웃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경북 울진은 내가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곳 이였는데 지금은 나의 제 2의 고향이 되었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우리부부에게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이다. 또한 희망키움통장이라는 좋은 제도로 인해서 우리 부부가 “영차”하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이 제도를 만든 분께도 감사 드리고 싶다. 두 번째 인생이니 절대 허투루 보내지 않고 도움이 되는 삶을 살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