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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불씨
  • 년도2015
  • 기관명경주지역자활센터
  • 제출자김대건
  • 조회수1,939
*자활수기집 제11호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선 '김대건 님'의 이야기 입니다.

꺼지지 않는 불씨

아이들 우는 소리에 몸을 뒤척이다가 창문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짜증스레 일어나 앉는다. 언제나 그렇듯 전날의 과음은 내 머릿속을 뒤헝클어 놓고, 몸은 다시 눕기를 고대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네 살배기 딸은 먹던 밥그릇을 엎질렀는지 옷은 물론 온 방바닥에 밥풀과 김칫국물이 쏟아져 있고 연년생인 둘째 아들 놈은 엄마를 찾으며 운지가 제법 됐는지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새벽까지 순대를 팔고 온 남편을 대신해 재료를 사러 포항에 간 엄마를 찾는 것이었다
. 엄마가 없어진 걸 알면 자지러지게 울 걸 뻔히 알면서 아이들을 뒤로하고 집을 나설 때, 아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업 한번 해보겠다고 잘 다니던 은행을 뛰쳐나와 갖은 고생만 시키는 실패한 남편.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루 하루 반복되던 힘든일상은 나를 더욱 미치게 하였고 당장 이라도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애써 감추며 살아간다. 나에게 가족이란 단어는 무거운 족쇄가 되어 두 다리를 묶어 놓았다.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반가운 소식이 왔다며 집사람은 ‘희망키움통장’ 얘기를 꺼냈다. 매월 저축을 하면 지원금이 붙는 예금이라는데, 현재 받고 있는 현금급여는 없어 진단다.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저축을 하라는 거야” 좋은 소식을 전하려던 집사람에게 괜한 핀잔만 늘어놓았다. 순대차를 끌고 나와 장사를 하던 새벽녘쯤 문득 집사람이 말하던 희망키움통장 얘기가 떠올랐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나중을 위해 저축을 하는 것이 좋은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한달에 10만원이란 돈은 우리 가정에 녹녹치 않은 돈이었다. 이런 저런 일로 머리가 복잡하였지만 갈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언제까지 이 일만 하고 있으란 법이 있나. ‘미래’란 단어가 무거운 짐이란 내 생각을 바꾸게 될지도 모를 기회인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집사람과 ‘희망키움통장’을 만들자고 입을 모았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면서 내 스스로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당월 누적금액 안내를 받는 날이면 조금씩 희망이 싹트고 있음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날짜가 되면 꼬박꼬박 적립금 불입일자를 챙겨주는 경주지역자활센터 담당자의 전화는 반갑기도 했거니와 다른 사람이 우리가족을 보살펴 준다는 푸근한 느낌마저 받았다. “어렵지만 적금 붓기를 잘했어” 피식 웃으며 한마디 건네자 아내는 살짝 미소를 머금고는 윙크로 답한다. 힘이 났다.

순대 차 영업은 시들해져 갔다. 줄어드는 매출과 더욱 열악해지는 마진으로 더 이상 순대차를 끌고 갈 이유가 사라지고 있었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평소 관심이 있던 휴대폰 사업에 도전해 보고 싶지만 지금껏 고민만 했었지 매번 선택을 주저하게 한 이유는 단하나 경제적인 부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희망키움통장 만기도래였다. 큰 결심을 하고 경주 법원 앞 대로변 3평 남짓한 작은 구멍가게에 휴대폰 가게를 열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생소했지만 이를 악물고 스스로 배워가며 일했다.
그러나 성공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개업 후 6개월이 지나갈 무렵, 업종 선택을 잘못한 것일까? 그만 포기해야 하는 걸까? 갈등은 깊어져 갔다. 하지만 중도에 그만 두어도 딱히 다른 일을 할 처지도 아니었다. 이러한 고민에 빠져 있는 날이 거듭되었지만 희망키움통장을 포기해야겠다는 나약한 마음은 단 한순간도 먹지 않았다. ‘성공이란 것이 그리 쉽나. 왜 철부지 같은 생각만 하는지... 나이를 헛먹었나?’ 언제다시 올지 모를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아갔다.

시간은 느리지만 멈추지 않았고 우리가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희망키움통장 만기일이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기엔 너무나 열악했던 주거환경에서 벗어나 작지만 깨끗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을 때 “엄마, 아빠, 여기가 진짜 우리집이야?” 하며 온 집안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기뻐하던 네 살, 세 살 남매의 환한 웃음과 한쪽 구석에서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애써 닦아 내며 소리 없이 통곡하던 애기엄마의 서러워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집을 이사하고 나서 다른 일들도 조금씩 풀려나갔다. 순대차를 하다 업종을 전환한지 만 1년 2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기존 가게보다 더 넓고 목이 좋은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아끼며 모아둔 돈과 소상공인 지원센터의 도움을 약간 빌어 확장이전을 감행하였다. 사실 좀 무리를 하는 것 같아 두려웠지만 나 자신을 믿고 과감하게 밀고 나갈 때였다. 한 달 후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전가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수의 고객들이 매장을 찾았고, 그 결과 매출은 기존 매장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것에 의미를 잃어버리고 꿈이란 단어마저 잊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두운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작은 등불을 본 것 같은 실낱같은 희망의 발견, 희망키움통장은 나에게 그런 것이었고, 우리가족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내가 만약 이런 제도를 몰랐더라면, 알고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 나의 주변에 나와 비슷한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도전하라”고 소리치고 싶다. 그 누구에게든 기회는 있고,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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