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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온 편지 - 숲길에서 삶을 보다
  • 년도2014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김명자
  • 조회수2,300

*자활수기집 제10호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선 '김명자 님'의 이야기 입니다.

숲에서 온 편지-숲길에서 삶을 보다


“이곳은 남방한계식물과 북방한계식물이 공생하는 해발 500~600m의 숲길이며,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한 자연림 숲입니다.....” 나의 생태숲의 해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남방한계식물과 북방한계식물이 공생하는 이 숲은 남과 북의 한계지점, 넘어서 죽을 것인가 살아서 남을 것인가? 그렇게 한계선의 식물이 함께 하고 있는 이곳은, 어떤 식물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인 셈입니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숲에, 가을이 들었습니다.

내게도 죽음과 삶의 경계가 되었던 어떤 가을이 있습니다.


죽음과 삶이 맞닿은 계절

2009년 가을... 반백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내느라 상처받고 참아내며 살아온 내게 이혼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분노에 몇 번이나 기절하며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결국 가정은 찢기고 서울 출신인 나는 일가친척도 없는 제주에 딸과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공생과 상생의 숲
숲의 식물들은 어떤 자리에 뿌리내리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은 다릅니다.
우리 숲 중간, 작은 개천근처에 바위를 뿌리로 움켜쥐고 살아가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그 녀석을 보면, 죽음 속에서 나를 건진 딸 생각이 납니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시간

경황없이 피난 가듯 나오느라 급하게 구한 집은 햇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운 집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나는 좋았습니다.
살아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 정신은 숨을 참는데 몸은 간사하게도 더 활발한 호흡을 해대던 심장소리가 지금도 그 밤을 생각하면, 들리는 듯합니다.
사람이 싫어 살아 있는 게 싫어서, 불도 켜지 않고 어둠속에 나를 가두어 그렇게 나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죽어가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나의 딸이었습니다.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딸아이는 “엄마가 너무 아파해서...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해서... 그래서 죽고 싶었는데.. 엄마가 보고 싶어서 깨어났어”
살려달라고 살고 싶다고 딸은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온몸으로 외치는 딸의 외침을 나만의 감정에 빠져 들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다시 죽음의 경계에서
다시 삶을 움켜잡았습니다. 나는 엄마니까요.
아침 7시부터 3시까지, 또 저녁 5시부터 10시까지. 식당에서 정신없이 일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의지만으로 삶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무리하게 사용한 한쪽 팔에 마비되며 장애가 왔습니다.
이제 식당일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다시, 더 깊은 어둠, 깊은 우울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또 죽음의 경계에서 삶으로 나를 건져 올린 건, 딸의 가출이었습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아이 이름을 부르며 밤새도록 울며 헤매고 다니고 있었다.
“따르릉... 엄마 나 좀 데려가” 또다시 아이는 내가 엄마였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내 삶의 이유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너를 잊고 있었구나. 내 딸이 있었는데 널 잃을 뻔했구나... 고맙다 살아 있어 줘서...’ 천사처럼 잠든 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태어나 내게 엄마라 불러준 내 딸의 미소, 그것이 내게 다시 삶의 이유를 주었습니다.
화나고 싫었지만, 동사무소 사회복지과를 찾았습니다.
‘.... 뭐라고 하지 무턱대고 살려달라고 도와 달랠 수도 없는데... 내가복지지원대상이라? 영세민? 빈곤층? 남의 일로만 여겼었는데... 나는 그동안 봉사자였는데...’, ‘저~저기요 제가 갑작스레 경제력이 없어서~’
“아 예 이걸 작성하세요.” 낮은 목소리로 상담을 하니, 지역자활센터를 찾아가 보라 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자활센터에 참여하였고, 팔 힘이 적게 들어가는 일들을 골라, 열심히 이력서를 냈습니다.

우연으로 보이는 필연적 선택
2011년 3월, 문화관광분야 예비 사회적기업에서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고, 취업 후 희망키움통장을 가입했습니다.
취업을 했다는 것도 좋았고, 내가 뭔가 이뤄갈 수 있다는 힘을 본 것이 더욱 좋았습니다.
처음 일은 과거 해설사들의 활동보고서를 읽는 일이었습니다.
방대한 역사지식 그리고 제주문화, 제주관광지, 식물... 모두를 넘나들어야하는 해박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는 걸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게 많으니 환경단체 교육을 받기도 하고, 지질해설사 양성교육을 받기도 하며... 한창 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사에 문제가 생겨 다시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실망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 조건에서 나를 발전시키며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직진할 수 없을 땐 우회하더라도
다시 자활에 의지하여, 임시로 생계비는 지원받고, 희망키움은 중단하고. 인큐베이팅 교육비 지원을 받아 곶자왈 해설사과정, 4.3아카데미를 들으며 제주의 아픈 상처와 제주섬 형성과정, 제주의 보존가치, 제주의 식생을 보고, 듣고, 느꼈습니다.
지난 3월 제주시청 공원녹지과의 사려니 숲해설가 모집공고가 나자, 과감히 이력서를 냈습니다.
드디어 나는 숲해설가로 채용되었습니다.
돌아가든 직진이든 길은 있었습니다.

나무와 말동무가 되어
눈이 쌓여 버스도 안다니는 길을 5.16 교래입구에서 내려 15분 걸어서 숲으로 출근했던 날이 생각납니다. 처음엔 해설보다는 숲에 익숙해지기 위해 매일 4.5km를 걸으며 아는 식물엔 인사하고, 모르는 아이는 너는 누구니 물으며, 생김새를 적어와 도감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이제 나는 나무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짓궃은 관광객에 대해 수다스럽게 고자질하는 녀석들도 있고, 조심스럽게 밤샘 수고로 터뜨린 봉오리를 내미는 녀석도 있고... 나무들이 내 말동무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나는 가만히 서서 숲의 대화를 듣고 있습니다.

희망이란 길과 같아서, 자꾸 가다보면 길이 된다더니, 이 일은 제 길이 되는 듯합니다.
나는 이제 숲에서는 세상이야기를 하고, 산을 내려가서는 숲이야기를 하는 특이한 생태숲해설가가 되었습니다.


다른 봄을 맞이하기 위한 시간

이제 단풍이 지고 나면, 숲은 본연의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이 숲을 지키고 있었던 단단한 숲의 뼈대가 드러날 시기입니다. 그것은 다른 봄을 맞이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은 또 다른 생의 시작이었음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잎새들 뒤척이는 소리, 딱따구리 부부의 대화, 개가시나무, 으릅난초, 고사리들의 수런거림이 이제 제 삶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땅바닥을 쳐야 튀어 오르는 공처럼, 땅바닥에 떨어지는 아픔 뒤에 다른 삶이 있음을 가을 숲에서 생각합니다.


2012년 가을, 사려니숲길에서
김 명 자


※ 추신 : 혹시 저처럼 앙상하고 황량한 시간을 힘겹게 건너고 계신 분이 있다면, 사려니 숲으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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