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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포근한 '자활덧신!' 다함께 신어보자
  • 년도2014
  • 기관명음성지역자활센터
  • 제출자안영희
  • 조회수2,057

*자활수기집 제10호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선 '안영희 님'의 이야기 입니다.

한겨울의 포근한 '자활덧신!' 다함께 신어보자


오늘 아침에도 계속되는 장마로 굵은 빗방울이 그동안 쌓였던 피로감을 풀어주듯이 시원스레 내리는 것을 보면서 출근 준비를 하느라고 분주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고령으로 누워 계시는 시어머님과 5년 전부터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병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병원에만 다니는 남편의 아침준비를 한 후, 계속해서 내리는 장맛비에 근처의 300평 남짓 심어 놓은 고추밭이 탈이 없는지 둘러보고, 고랑에 고인 빗물이 빠지도록 도랑을 만들어 주다 보니, 온몸은 어느새 비에 흠뻑 젖어 입고 있던 우비조차 소용없었지만, 장맛비에도 꿋꿋한 고추를 보면 그것조차 신경쓰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 운동화 세탁소 식구들과 정으로 나눌 점심도시락을 싸서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면서 오늘도 하루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이런 시간을 저에게 주신 모든 신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10년이 넘도록 포장마차를 하려고 손수레에 갖은 도구를 잔뜩 싣고서 원남면에서 음성읍까지 15리가 넘는 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오가는데 흘리는 것은 땀보다 눈물이 더 많았습니다. 포장마차라는 것이 계절을 많이 타기에 추운 겨울이 수입이 좋긴 하지만, 원남면에서 음성읍을 오가는 눈 쌓인 그 길은 추위와 온갖 도구 무게, 그리고 피로가 더해져 발길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준비를 해서 호떡, 떡볶이, 어묵 등을 만들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골목에 놓고 장사를 하다 보면, ‘왜 우리 집 앞에서’, ‘왜 우리 가게 앞에서’, ‘왜 우리 마트 앞에서’ 하며 비난을 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죄송합니다.’를 연실 외치며, ‘오늘만 봐주세요. 내일은 다른 곳을 알아볼게요.’ 하며 장사를 하기보다는 다른 위치를 알아보려고 동분서주하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다 저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병원 앞에 공간을 내주신 고마운 분이 계셔서 그곳에서는 한 3년 장사를 할 수 있었으나, 항상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진 못했고, 남편의 건강악화로 잦은 병원 진료 때문에 그나마 하던 포장마차마저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또, 시어머님께서도 골다공증 및 고혈압 등으로 이틀에 한 번씩 병원을 출입하셔야 해, 근근이 이어가던 생활에서 빚까지 불어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포장마차에서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을 해도 하루하루 늘어 가는 것은 병원비로 인한 빚과 아프다는 암담한 소리 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화장실을 10분에 한 번씩 드나들며 음식을 3일째 전혀 넘기지 못하는 남편을 보면서 ‘그래도 멀쩡한 내가 저 사람을 살려야지.’ 하는 생각에 어느덧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그러다 찾아간 곳이 면사무소 사회복지 담당이었고, 그동안의 사정과 지금 현재 상황을 얘기하면서 도움을 받을 수 없겠냐 했더니 소개해준 곳이 지금의 자활센터입니다.

음성지역자활센터에 상담을 받고, 운동화 빨래방을 시작하려고 준비단계에 있으니 참여해 보라고 하여 2010년 2월 1일부터 자활근로사업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 명이 한팀이 되어 사무실에서 임대해 준 가게의 색칠이며, 기계를 들여놓고 이것저것 운동화를 세척 할 수 있는 사업장을 만들려고 하루하루 바쁜 나날들이었습니다.


담당자가 의뢰해 준 경기도에 있는 업체를 방문해서 운동화 세탁을 위한 기술을 배우려고 내 큰아이보다 더 젊은 업체 대표에게 ‘사장님’, ‘사장님’ 하며 작은 것 하나라도 더 배우려 이것저것 많이도 물어봤습니다. 이런 것들이 고되다는 생각보단 나도 무엇인가 배워서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운동화 빨래방이라는 간판을 걸고 3명이 한 팀이 되어 자활근로사업단을 시작하게 되었고, 집에 있는 운동화를 가져다가 시범적으로 빨아서 기계를 작동하여 말려보기를 며칠씩 반복하고, 사무실 담당자와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있으면 개선하거나 보완하고, 신발을 맡기려고 오신 손님과도 부족한 점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기를 하면서 시작한 사업이 어느덧 한 켤레가 두 켤레, 두 켤레가 열 켤레, 스무 켤레가 되어 일정 수준의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팀원들의 배려로 반장이란 중책도 맡게 되고 홍보 등을 통해 조금씩 입소문을 타면서 매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자립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며 공동체로의 전환을 제의받게 되었습니다. 팀원들과 고심 끝에 공동체 출범을 결심하였고, 드디어 자활근로사업 참여 1년 7개월 만인 2011년 9월 16일 공동대표이기는 하지만 내 이름을 건 ‘일할 수 있는 공간’, ‘나의 터전’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침에 자리에서 일찍 일어나 내 주위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기도를 합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힘들고 모든 것이 나를 버린 것 같이 느껴졌었지만, 지금은 추운 겨울날 따뜻한 자활의 덧신이 나의 발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느낌입니다. 우리 음성지역자활센터 참여자 분, 사무실 실무자 분 모두 건강 유념하시기 바라며, 제가 그 어느 분보다 너무 많은 혜택을 받은 것 같아 다른 분들께 죄송스런 마음마저 듭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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