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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안경을 벗고 믿음의 안경으로 바라보기
  • 년도2014
  • 기관명광주광산지역자활센터
  • 제출자윤성기
  • 조회수2,063

*자활수기집 제10호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선 '윤성기 님'의 이야기 입니다.

두려움의 안경을 벗고 믿음의 안경으로 바라보기

살면서 나는 늘 중세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말을 되새겨 보곤 한다.

‘두려움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만사가 다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차 보이고, 믿음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좋게 보이며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고 했다.


중세의 독일에서는 고학생들이 남의 집 창문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돈을 받는 아르바이트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노래 실력이 형편없거나, 집 주인의 성격이 곱지 않으면 무안을 당하고 빈손으로 쫓겨날 수도 있었다.

한번은 루터가 어느 부잣집 창문 아래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체격이 크고 무섭게 생긴 사나이가 창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바라보더니 냅다 뛰어 나오는 것이었다. 루터는 그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자기 노랫소리가 듣기 싫어 주먹질이라도 할 줄 알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나이는 계속 쫓아왔고 결국 발이 빠르지 못한 루터는 붙잡히고 말았다.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루터에게 그 사람은 돈 뭉치를 내밀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루터에게 장학금을 주려는 따뜻한 마음의 자선가였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 환경을 어떤 안경을 쓰고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고, 그 해석에 따라서 삶의 질이 변할 수도 있음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절실히 깨닫게 된다.


내 나이 어느덧 耳順(이순)을 바라다보는 시점에서 나는 또 한 번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 동안의 내 삶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들이 많지만 그래도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처럼 이제부터의 나의 생은 믿음의 안경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에 도전하고자 한다.


젊은 시절 나는 서울 소재의 좋은 대학에서 멋진 포부를 꿈꾸며 학창시절을 보냈고 내가 원하는 이상형의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삶이 늘 평탄하지만은 않았고 나의 호기와 자만심이 불러일으킨 치기로 인해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 게다가 홀로서기 위해 손을 댄 사업마저 무너지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그런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내 나이 마흔 아홉에 급기야 중풍으로 육신까지 무너지게 되었다. 어디에서도 당당하고 자신 만만하던 나는 사라지고 점점 패기를 잃은 채 나이만 들어가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전전하던 지난 5월 초, 광산구청 담당자로부터 차상위 계층에 주어지는 복지혜택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광주광산지역자활센터 사례관리팀 인큐베이팅사업단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담당자로부터 자활사업과 인큐베이팅사업단의 교육에 관한 안내를 받고 처음에는 경제적인 절박함도 있었지만 꿈틀자활인큐베이팅사업단이 어떤 곳인지, 교육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곱지 못한 시선을 들이대며 경계심 반, 호기심 반으로 사업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삶의 이력과 연령대를 가진 참여자들이 계셨고 나는 과연 이 사람들과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노파심마저 들었다. 어느새 현실의 나를 잊고 패기만만하던 젊은 날의 본색이 되살아난 나는 단순한 나의 빗나간 잣대로만 자활사업과 다른 참여자들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교육이 계속되어지면서 나의 정서는 그들과 함께 동화되어가고 있었으며 그전 참여자들이 새로운 작은 희망을 안고 기쁜 맘으로 다른 사업단과 일터를 향하여 떠나가고 참여자들 중의 반장의 역할이 내게도 주어지면서 점점 교육에 몰입하게 되었다. 처음엔 내 눈 아래로 보여 지던 사람들이 비로소 나의 동료로 보이게 되고, 그들의 순수하고 정감 있는 모습들이 나를 정화시켜 현실에서의 내 위치를 돌아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차츰 자활사업단에 익숙해지고 다양한 교육을 통하여 내 처지를 냉철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언제까지 이대로 차상위자활 급여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즈음, 내 마음속의 믿음의 안경이 나의 신념에 요술을 부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남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의 구인광고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큰마음을 먹고 첫 도전한 것이 송정역 앞 버스 정류장에 나붙은 주유소 구인광고였다. 그러나 쉽지 않은 나이에 첫 도전한 나의 주유소 아르바이트는 일당 5만원에 열악한 근무환경, 고용주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인해 고생만 실컷 하고 속이 상한 채로 5일 근무 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취업도전의 실패 후 재 참여한 인큐교육 중 “KFC 창업주 커넬 할랜드 샌더슨의 1009번째의 도전” 영상교육은 돌아온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것만 같았고 다시 꿈틀인큐베이팅사업단으로 돌아온 나에게 재도전의 의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두 번째 도전은 희망키움 집단상담 프로그램 교육을 마치고 때마침 열린 「2012 광주일자리 박람회」에 참여하여 다양한 연령대의 일반인들에게 사업단 공동작업 작품을 전시하여 자활인으로서의 작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자활사업에 대한 안내와 홍보를 하는 한편, 그들과 당당히 겨루어 취업에 도전하여 이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서산 콘크리트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출・퇴근 여건 등 몇 가지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취업을 향한 두 번의 늦깎이 도전은 성취를 위한 욕심과 자만으로 충만 되어 있는 나의 의지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고 일순간 나를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늦었다고 포기하기에는 나의 신념과 열정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기에 나는 또 다른 도전을 향해 열심히 눈을 돌렸고 더욱 체계적으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취・창업과정 교육을 받으며 열심히 준비하던 중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라고 했던가 우연히 내게 다가온 코레일 관광개발의 <환승 도우미 채용 공고>는 그야말로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


꿈틀자활인큐베이팅사업단의 취・창업과정 교육프로그램을 통하여 익히고 배운 대로 이력서 작성 및 관련 서류와 구비자료를 철저히 준비하여 제출하였고 드디어 원하던 서류심사에 합격하였다. 두 번째 단계로 코레일 관광 개발 집단 면접 시험에서도 실전 면접교육 및 수료증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최종적으로 신체검사까지 무사히 통과하여 당당히 합격을 하고 코레일 관광개발의 직원으로 1개월 동안 성실하게 근무를 잘 마쳤다. 그 결과 처음으로 받은 급여는 4대 보험 및 세금 납부 후 실 수령액 1,656,400으로 젊은 시절에 비하면 만족 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지만 내 나이 58세로 재 취업하여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나의 힘으로 이루어낸 성과라 생각하니 너무나 뿌듯하고 값진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요즘 하루하루가 내 인생의 여느 때보다 소중하고 행복하다.

젊은 날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내 존재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했을 뿐더러 나의 소홀함으로 잃어야했던 내 가족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용서의 마음과 그리움, 그리고 간절함을 되새기며 남은 생은 그동안 살아온 날들의 몇 배 만큼 값지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노심초사하며 도와주시고 후원하여 주신 광산지역자활센터 꿈틀인큐베이팅사업단 김두진 팀장님과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오늘도 사업단에서 교육을 받고 계실 여러 참여자님들의 건승을 빌며 아울러 취・창업을 위한 노력과 신념으로 모두들 두려움의 안경을 벗어던지고 믿음의 안경을 바꾸어 착용하시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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