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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늘도 내 아이들 위해 달린다
  • 년도2014
  • 기관명부산중구지역자활센터
  • 제출자신필옥
  • 조회수1,659

*자활수기집 제10호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선 '신필옥 님'의 이야기 입니다.

난 오늘도 내 아이들 위해 달린다

우리가족은 10명입니다. 아니 10명이었습니다. 2남 6녀 우리 아이들과 우리 부부까지 10명의 대가족이 넉넉하진 못하지만 화목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큰아들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냥 감기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고 말입니다.

말로만 듣던 백혈병, 거기다 급성 너무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백혈병이라 진단받고는 5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대로 된 치료도 한 번 받지 못하고...

13살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난 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고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직업이었던 요양보호사일도 병원을 오가면서 해야 했기에 아이 생각에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우울한 생활에 빠져들고, 9명 대가족의 살림은 점점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엄마의 손이 필요했지만, 다른 아이들을 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눈을 뜨면 아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슬픔에 눈물이 나고, 눈을 감으면 아이의 모습이 아른거려 눈물이 났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자신의 동생, 형을 잃은 아픔도 있지만 엄마로써 다독여줄 기력도 없이 그냥 마냥 슬펐습니다.


가계도 점점 기울어 생활이 더욱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고,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우리 아이들 챙겨야 하는데’ 하고 생각만 할 뿐 몸과 마음은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마침 주민 센터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조금 어떠신지, 다른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니, 자활센터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언제까지 상실감에 빠져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자활센터에 상담을 받았습니다. ‘엄마사랑’ 사업단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산후관리서비스, 베이비시터서비스,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나가야 한다고 설명을 듣고, 그래 난 할 수 있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게 됨으로써 먼저 떠난 아들을 생각하고 지금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마음먹은 만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이렇게 하면 내가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감도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사업장에 있는 동료들에게 조언도 많이 구하게 되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았습니다. 일을 한다고 해서 아들을 잃은 상실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그리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센터에서 실시하는 교육에 참석하였고, 거기에서 만난 강사님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픔을 다 이야기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처해있는 상황과 아들을 잃어서 마음이 아프다는 것 까지 술술 다 이야기 하였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정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강사님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엄마가 이렇게 사는 것을 아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항상 이렇게 힘없이 살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들도 엄마 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겠네요.” 라고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사는 것을 하늘나라에서 아들이 보고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일어서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먼저 떠나간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슬프지만 아직 남아있는 나의 자식들, 7명을 생각하게 되었고 ‘다시 일어서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하기로 다짐하고 시작한 일은 가사도우미로 80대 노부부가 살고 있는 가정에 가사도우미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약간의 치매와 거동이 많이 불편하였고 할아버지도 다리가 불편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적응을 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점차 적응을 해가고 있었는데, 아침 출근할 시간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온 전화였습니다. “할머니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있다.” 라는 전화를 받고 바로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할머니는 응급실에서 의식이 없었고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할머니 곁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아들, 딸이 외국에 있는 상황이었고 누구에게도 연락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저에게 연락을 하셨던 것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의 입원수속을 밟고 입원을 시키고 간병인을 구하였습니다. 병원에 대한 아픔이 컸던 만큼 정말 병원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저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 주어진 일이였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하였고, 가까이 자녀가 없어 힘들어하던 그 노부부의 손발이 되어드리며 의지할 딸 같은 존재가 되어가며 온 신경을 그 노부부에게 쏟으니 하늘나라에 있는 아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고 일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동료들과 마음껏 웃기도 하고 아이들과 납골당에 찾아가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어두운 곳에서 숨어만 있던 저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합니다.


가사도우미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요양보호사자격을 가지고 있음을 뿌듯해 하며, 이렇게 나의 생활에 우리 가족의 생활에 정상궤도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픔을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지만, 이렇게 자활센터에 와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나만을 생각해서 안 되는구나, 나에게는 나의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중구지역자활센터에 고맙습니다.


나는 나의 아픔에 좌절하고 아파만 하고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엄마로써 아내로써 최선을 다하는 사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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