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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꼭 이루는 것
  • 년도2013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우임선
  • 조회수3,022

*자활수기집 제10호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선 '우임선 님'의 이야기 입니다.

되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꼭 이루는 것

오늘도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정신없이 바쁘게 다니다 보니 몸이 지친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내가 꾸고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이며, 목표를 향한 길임을 생각하면서 땅을 억누르는 듯 피곤하고 지친 몸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워본다. 아이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저녁을 먹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내일의 일정을 점검한다.


남의 일로만 느껴졌던 창업의 꿈, 어릴 적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선생님, 한동안 어둠 속 깊숙이 숨겨 놓았던 그 커다란 꿈들을 이제 희망이라는 밝은 세상에 내어놓고 그 꿈을 향해 한 계단 한 계단씩 오르고 있다.


일하며, 배우며, 가르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된 일상들에 지치지만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고 행복하다. 지금 이렇게 꿈을 이루기 위해 힘쓰는 중년 아줌마의 모습에서 아픈 기억으로만 남는 젊은 아줌마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찾아보았다.


오전에는 책 납품업체에서 경리로, 오후에는 시장 노점에서 도서 판매로 혼자 동동거리며 아무리 뛰어다녀도 아이 둘과 남편의 사업실패로 늘어나고 있는 빚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하루 하루였다.


도서 판매 수입도 점점 줄어 계절별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 판매도 해보고 새벽에 토스트와 커피도 팔아보았지만 형편은 어려워만 지고 그러던 중 셋째 아이를 낳게 되어 직장도 노점도 모두 정리해야만 했다. 더욱이 남편과 이혼을 하고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고 쉬고 있는 날들이 내겐 살아야 할 이유보다 죽고 싶은 이유가 더 많은 날들이었다.


취직을 다시 하기에는 나이도 있고, 아이도 어리고 해서 간병인 교육을 받아 병원 실습 3개월까지 마쳤으나 거리도 멀고 24시간 아니면 12시간을 일해야 하는 근무 조건이 아이들을 돌보며 다니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행히 가정 방문과 함께 할 수 있는 간병인도 있다고 하여 주민센터에 구직 신청서를 제출하고 기다리던 중 간병인이 아니라 가산종합사회복지관 분관 꿈터 방과후교실 사회복지사를 보조하면서 초등학생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


2007년 구 직영 자활사업인 복지시설 도우미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일터는 집과 가까워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 백일이 갓 넘은 아이를 돌보며 다니기에 너무 좋은 조건이었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방과 후에 돌봐주는 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 방과후교실에 오는 아이들을 보며 내 아이들과 같이 어려운 환경 탓에 학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특기가 있어도 키워 줄 수 없는 환경을 속에 있는 아이를 보면서 도와 줄 수 없어 아픈 마음을 되뇌어 볼 뿐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배워서 가르쳐 주면 좋을 텐데....

셋째 아이를 낳으면서 그전에는 먹고 사는 일이 다급해 시간을 내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는데 서른 후반에 늦둥이를 보고나니 그 아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들어갔을 때 ‘엄마를 얼마만큼 자랑스러워할까? 초라해진 내 모습에 나 또한 자신이 없는데 우리 아이들 눈에 나는 어떻게 비추어 질까? 나이 들어 힘이 부족할 때는 무엇으로 먹고 살까? 지금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나이가 사십대인데 무엇으로 취직을 하고 무엇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건물 청소 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평생 직업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내 아이, 내 손자들에게 어떤 엄마, 어떤 할머니의 모습으로 남고 싶은가? 방과 후 아이들을 보며 보육교사 자격증이라도 취득하면 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였지만, 학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으므로 그 또한 생각으로만 머물 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 아이들도 미술에 소질이 있고 운동에 소질이 있어도 학원에 보내주지 못하는데 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2009년 3월 가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주일에 한번 여성 가장들을 위한 기술 습득을 위한 무료교육이 신설되었다.

2~3개의 과목을 순차적으로 개설하여 실시하였는데 첫 과목으로 POP 예쁜 손 글씨 수업이 있어서 자활사업 참여가 끝난 후 6시반부터 8시반까지 교육을 받게 되었다. 나 자신을 위해 교육을 받는다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것보다 자격증 취득 후 부가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더 설레게 만들었다. 시간이 주어지는 한 손에서 붓을 떼는 일 없이 부지런히 연습을 하였다. 3개월 교육과정 후 POP 예쁜 손 글씨 기능사 자격증은 취득하였지만 실질적인 부가소득을 위해서는 다양한 글씨체 및 입체 글씨 꾸미기 등 전문적인 교육이 더 필요했기에 또 다른 과정인 핸드페인팅 CA반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 교육도 첫 교육과 마찬가지 3개월로 기본교육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두 과정 모두 기본적인 부분만 배우고 수업이 끝이 나서 다양한 글씨체는 배울 수가 없어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 후 2009년부터 나는 복지관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교육을 수료하고 다양한 자격증 (POP디자인기능사자격증, 폼아트디자인 지도사 자격증. 패션핸드페인팅3, 2급 자격증, 예능아동예쁜손글씨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여러 개의 자격증은 취득한 상태였지만 지속적인 실습, 훈련, 전문가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형편 때문에 외부지원 없이는 스스로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마무리가 되는건가’ 하던 차에 관장님으로부터 전문가 교육 제안을 받게 되었다.


가산종합사회복지관이 2011년부터 민간위탁자활근로사업 실시기관으로 선정되어 수공예 사업단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참여를 하게 된 것이다.
사업단 참여자들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되어 3급, 2급 사범과정까지 교육을 받고 강사로도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여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거라고, 남의 일이지 나에겐 해당사항이 없을 것이라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후 나는 전문적인 교육을 더 받아 지금 현재 방과 후 CA강사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 해성 국제컨벤션고등학교 토탈 공예 강사, 구로구 근로자 복지센터 pop 예쁜 손 글씨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외부행사에 초대되어 체험부스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 그냥 머릿속에 남아있어 생각만 했던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몇 년 전 방과후교실 아이들을 보면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었던 생각들을 실천에 옮길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 금천 행복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폼 아트, pop, 페이스페인팅, 반짝이 글씨 등 다양하게 체험 해 볼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2011년 4월 처음 시작된 수공예사업단이 쵸크아트, 냅킨아트, 윈도우 페인팅 벽화 등 더 많은 다양한 종목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개인 수강을 하는 등 복지관 관장님,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더 많이 의논하며 2014년 자활기업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이제 수공예 토탈강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우리 수공예사업단 BMW(Bravo Mom Work) 참여자 5명은 혼자가 아닌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의지하며 정보공유 및 서로의 재능을 나누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이 나는 너무 좋다.
2011년부터 시작 된 사업단. 2014년에 창업 할 수 있다는 꿈을 위해 나아가는 이 시간만큼은 모두가 함께 이루는 목표이기에 혼자일 때 보다 더욱 큰 힘이 된다.

다만 이제 남은 걱정 한 가지 있다. 최저 생계비로 생활하기에는 정말 빠듯하고 아직 빚이 있어 아직까지는 힘든 상황이다.

복지관에서 이런 나의 어려운 상황을 아시고 저녁시간대 구로구 근로자복지센터 강사로 출강한 부분은 자활사업 근무시간 이후의 시간이라 사업단 소득이 아니라 개인 소득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수입이 발생하였을 경우(원천세 신고) 생계비가 줄어든다고 한다. 물론 경험을 축적 하는 데는 도움이 되고 있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활임금 이외에 부가소득을 저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의 절망감을 느꼈다.


공동체가 형성될 경우 사업단에서의 지원이 있겠지만 만일 개인 창업을 희망할 경우 저축해 놓은 돈도 없고 더욱 공예분야는 직원 없이 1인 운영체제가 많아 취직이 쉽지 않은 편이다. 어쩌면 실현 가능한 분야, 창업이 아닌 취미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고 도중에 포기하시는 분이 더 많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기초수급자들이 저녁시간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대부분 기술 분야가 아닌 식당, 청소 등 노동력을 투입하는 곳에서 일당을 받게 된다. 소득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기술을 습득하면 좀 더 많은 수입, 좀 더 나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경험한 것처럼 자활 임금 외 발생한 수입만큼 생계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창업을 하게 되면 사업자등록을 하게 되는데 이때 기초수급자에게 주어지는 지원들이 끊길 수 있게 된다. 아직 아이가 어려 스스로 많은 교육비, 의료비 등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창업에 대한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 또한 지금 2년 뒤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리 밝지는 못하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 않고 싶지는 않다. 좀 더 먼 미래를 그리며 오늘, 하루가 지난 또 오늘은 힘들겠지만 나의 내일을 위해, 우리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지금의 어려움을 발판 삼아 뛰어보고 싶다.

앞으로 2년 뒤에 토탈수공예 강사로서, CEO로서 당당하게 서있는 나의 멋진 모습을 꿈꾸며 실력을 쌓아 나아갈 것이다. 나와 같은 어려운 환경에 있는 많은 사람들, 유사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성공해서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신저가 되고 싶다. 몇 년 후에는 성공한 사회적 기업인으로서의 성공사례로 수기를 반드시 쓰고 싶다.


가산종합사회복지관 복도에는 내가 쓴 POP 예쁜 손 글씨가 부착되어 있다. 희망이 오늘을 이깁니다. 이 글귀처럼 나의 꿈은 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는 것이며, 오늘의 고통을 내일의 희망으로 이겨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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