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홍보

고개를 들어 봅니다
  • 년도2013
  • 기관명제주이어도지역자활센터
  • 제출자유화자
  • 조회수2,293

*자활수기집 제9호(희망의 사다리)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선 '유화자 님'의 이야기 입니다.

고개를 들어 봅니다

매미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닙니다.
새벽녘 쌀쌀한 기운은 이불속의 몸을 한껏 움츠러들게 하다가도, 한 낮만 되면 뜨거운 태양에 숨이 턱턱 막혀옵니다. 그럴 때는 허리 한번 펴고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사방을 둘러봅니다.

3만평에 이르는 넓디넓은 차밭은 그저 초록빛뿐입니다. 그 속에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애벌레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가을에 올라오는 차 잎을 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수제녹차를 만들기 위해섭니다.
뒤로는 청록빛 방풍림들이, 앞으로는 연둣빛 차나무들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제주처럼 아름다운 곳을 본적이 없습니다.
눈을 잠깐 돌리기만 하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쪽빛 바다가 들어오고, 저 멀리 손에 잡힐 듯 누워있는 한라산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오름들이 키재기를 합니다.

야생초차를 생산하는 일을 하다 보니 사계절 모두 들녘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자연을 늘 만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주가 이토록 아름다운 줄 몰랐습니다. 아니 그 어느 것도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행복한 것이 없었습니다.

언어도 풍습도 심지어 바람조차도 낯설기만 한 제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하기만 한 가정, 매일매일 쪼들리는 생활 속에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2002년에 서울에서 큰아이 데리고 제주에 내려와 재혼을 하고 둘째아이 낳을 때 까지만 해도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한다는 기대감을 조심스럽게 품고 있었는데,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이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독립을 하게 되었고, 피붙이는 커녕 비빌 언덕조차 하나 없는 곳에서 저의 절망은 끝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던 바로 그때, 정말이지 우연히 ‘자활’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자활에 들어와 시작한 일은 ‘아름다운 손길’이라는 가사간병 사업단이었습니다. 독거어르신, 장애어르신들에게 가사지원도 해드리고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을 병원에 모시고 가는 일들을 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부여잡는 심정으로 일을 했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힘든 시간들이 지나가고 이제는 좀 적응이 되는가보다 할 때에 ‘아름다운 손길’ 팀이 바우처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사업이 종료되었습니다.

사업 종료 전부터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아가야 할지 정말 막막했습니다. 밤에 잠도 잘 오지 않고 밥맛도 없었습니다. 얼마 전 절망 속에 허우적거렸던 그때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바우처사업으로 가지 못하게 된 저는 혼자 몸만 같으면 아무데라도 가서 막노동이나 식당일이라도 하겠는데, 아직 나이어린 아이들 때문에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는 정말이지 어려웠습니다.

결국 저는 자활에 남기로 했고 ‘제주다드림’이라는 사업단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다드림 사업단은 전통차를 만드는 사업단입니다. 산과 들을 다니며 야생초의 잎을 채취해 가마솥에서 덖고 가공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일을 합니다.

저희가 주로 만드는 차는 조릿대차, 쑥차, 녹차, 들국화차 등이며 이것들은 제주 들녘에서 깨끗하게 자란 야생초와 야생꽃이 원재료입니다.
제주조릿대는 천아오름, 노꼬메오름 등 한라산 자락에서 자란 것의 새순을 채취하여 400도가 넘는 가마솥에서 덖어 차를 만들고, 들국화차는 들에 피어있는 조그만 감국 꽃을 일일이 하나씩 손으로 따서 뜨거운 물에 데쳐 건조기에 말려 차를 만듭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정말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만 클 때까지 버텨보자는 마음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주에는 피붙이 하나 없던 제게 이젠 한시라도 안보이면 서운한, 함께 일하고 서로를 돌아봐주는 가족 같은 동료들이 생겼고,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자연과 함께하니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가볍기만 합니다.
제 주위의 모든 것에 대한 불만도,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분노도 이제는 사라지고 마음은 평온해졌습니다.

지금은 예쁜 것도 보이고, 행복한 것도 느끼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나와 아이들의 미래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만큼 저 또한 성장하고 있습니다. 자활사업단이었던 제주다드림은 2011년 5월에 자활공동체로 인정을 받으며 새롭게 출발하였습니다.

특히 제가 몸담고 있었던 제주이어도지역자활센터의 도움으로 제주향토기업에 선정되어 직원들의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사실 자활공동체로 나간다는 것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많았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독립해서 4개월이 지난 지금, 제 가슴은 설레임으로 차오르고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 일찍 일어나 일터로 나갈 수 있고, 바쁜 때는 굳이 야근이라 부르지 않아도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할 수 있으며, 주문이 들어오면 휴일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움직입니다. 아마도 이런 것이 그동안 자활센터에 있으면서 수없이 들어왔던 ‘희망’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혼자 웃기도 합니다.

조그맣고 예쁜 들국화들을 투명한 유리병에 담아 포장 할 때는, 이 차가 어떤 분에게 전달되든 그 분에게 이롭고 따뜻한 차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 담을 만큼 이 일에 자부심과 긍지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자활에서 일을 하면서 운전면허도 취득하였고, 얼마 전에는 컴퓨터교육도 받았습니다. 이렇게 저를 발전시키고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제주이어도지역자활센터에 늘 감사하며, 저와 제 아이들의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게 해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남편과 헤어질 때 초등학생이던 큰아이가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자활’과 함께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는 아이들도 고맙고, 열심히 일을 하면 그만큼 보람이 되는 자랑스러운 직장과 동료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수그렸던 고개를 들어 천천히 주위를 둘러봅니다. 흐르는 땀방울 덕에 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더욱 시원합니다. 저려오는 허리 때문에 복대를 두르고도 허리 한번 펴지 않는 동료들이 어느새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저의 희망도, 제주다드림이라는 공동체의 꿈도, 그렇게 가까이 다가와 있는 듯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