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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 년도2013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장현숙
  • 조회수1,945

*자활수기집 제9호(희망의 사다리)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선 '장현숙 님'의 이야기 입니다.

꿈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꿈은 어느 곳에도 없다?”
NO!
“꿈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나의 어린시절을 표현하자면 ‘가난’이라는 두 글자만 생각이 난다.



가난한 집안의 3남 3녀중 장녀로 태어난 나에게 일상생활이란 사계절 농사일로 바쁘신 부모님을 따라 학교보다는 논과 밭으로, 연필보다는 낫을 잡는 일이 많았고,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같이 뛰어노는것보다는 어린동생들을 돌봐야했던게 전부였다.



집안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을때는 학교가는 친구들의 빨간 가방이 마냥 부러워 시꺼먼 때가 잔뜩 끼어있는 손톱만 뿌옇게 흐려진 시선으로 내려다 봐야했던 하루하루가 원망스러웠다.



집안 식구 모두가 다 붙어서 일을 해도 가난이라는 놈은 우리 집 구석구석에 붙어서 떠날 줄 몰랐고 끝내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린나이에 난 일터로 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손에 쥘 수 있었던 돈은 고작 짜장면 한 그릇 값 정도...

더 악착같이 일을 해야겠다. 그래도 방직공장으로, 건설현장으로, 식품공장으로 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전전하며 일을 한 덕분인지 가난이란 녀석이 나에게서 슬슬 떠나가기 시작했고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지는 잔고를 볼 때마다 희망이란 녀석이 내가슴에 자리를 잡아갔다.



그런데 불행이란 녀석이 많이 심심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아는 고향 동생이 찾아왔다.
무남독녀 외딸로 귀하게 자라고 예쁜 가방을 메고 빨간 치마를 입고 동무들과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등교하던, 순수하고 귀엽고 이뻤던, 언제적인가 좋은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던 내가 마냥 부러워했던 그 아이.



그러나 내동생들관 다르게 왠지 귀티가 났고 뽀얀 피부가 돋보여서 유독 예쁘고 귀여웠던 동생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퀭한 눈에 얼룩이진 누더기 옷, 유난히 떨어대던 손과 솔솔 풍겨져 나오는 술냄새.. 어디서도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언니! 제가 사기를 당했어요...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어요... 흑흑”


사기를 당했다 한다. 믿었던 사람이었는데 사기를 당하고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는 것과 어찌어찌하다 나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렇게 찾아왔다고 했다.

우선 주린 배를 채워주고 추위를 면하라고 옷 한 벌도 사 입히고 세월의 고단함인지 안쓰럽게도 구부정하게 잠이 든 그 아이 자는 모습을 뒤로하고 출근을 했다.

퇴근 후 돌아오니 그 아이는 가고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아이만 간게 아니었다. 내 희망의 보금자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내가 마냥 부러워했던 그 아이는 나의 희망들을 모조리 훔쳐가 버렸다.
밤낮없이 돈 모으는 재미로 힘든 줄 모르고 모아가던 나의 통장들


웃음을 잃었고 세상은 무서웠고 사람은 싫었다.

돈을 벌고 싶은 맘도 사라지고 꿈조차 꿀 수도 없는 하루 하루의연속이었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부산으로 건너가 다시 일을 시작하던 봄날.
우연히 남편을 만났다.

가진건 없지만 다정다감하고 미소가 아름답던 그 사람은 나에게 안개꽃 한 다발을 안겨주며 사랑의 마음을 전달했고 어느새 나의 굳게 닫힌 마음의 자물쇠는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했고 8년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우린 결혼을 했고 남편의 고향인 이곳 김제에 와서 정착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일용직노동자로 난 시부모님 봉양과 농사일로 비록 가난은 했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족간의 사랑의 힘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던 행복한 가정이었고 모든 시름을 덜어낼 수 있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하게 되어있었나 보다.
가난의 틀은 깨지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남편이 과로로 쓰러져 뇌사에 빠져버렸다.



어느해 가을...
남편은 어린 아이들 셋과 나만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보겠노라고, 다섯 식구 행복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사람 좋은 웃음 보여주던 사람이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아이들은 어렸고 가난에 막막함에 우선 든 생각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그러나...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사실 모든 게 두려웠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 도전한다는 것도... 지쳤고 사실 모든 게 무서웠다.
누군가 삶이 방식을 알려주기를... 도대체 내가 뭘 원하는지 조차 몰랐고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 난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역자활센터를 알게 되었다.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여러 상담을 통해 처음에 들어오게 된 게 가난한 이웃들을 찾아다니면서 봉사를 실천하는 김제사랑 실천단이었다.

난 가난했고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고 사실 너무나 지쳐있던 때라 누군가를 위해 봉사를 한다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마음은 아니었다.
단지 여기서 돈만이라도 조금 벌어서 아이들이 학교공부를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만 간절하였다.



그런데 봉사를 실천하면서 나의 작은 도움이 어느 누군가에겐 큰 도움으로, 세상의 빛을 줄 수 있다는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 난 무언가를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간병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응급처지법을 배우고 빠른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운전기술을 배워 차량지원을 하였고 힘들어하는 직원들에게도 용기를 심어주면서 서로 도와가면서 맘의 여유를 찾아가게 되었다.



어느새 자활사업에 참여한지 십년...
현재는 세탁나라 사업단에서 단장일을 맡아 사회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만나게 되면서 재도약을 다지게 되는 계기와 희망을 알게 되었다.



지역자활센터는 가난으로 인하여 두려움과 지침으로 베품과 나눔의 삶이 부족했던 나에게 사랑의 기술을 알게 해주었고 비록 적은 돈이지만 돈도 벌면서 나의 작은 힘이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삶의 희망과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과거의 나처럼 삶이라는 것이 마냥 지치고 두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꼭 그런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꼭 재정적으로 우뚝 서는 것만이 자활이 아니라 나와 같이 두려움을 떨쳐내고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게 진정한 자활이지 않나하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난 예전처럼 힘든 일이 있다고 울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예전처럼 혼자였다면, 맘의 여유가 없었다면, 조그만 일에도 나의 맘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져 고통의 해방구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주위엔 내슬픔을 같이 나눠줄 친구들도 있었고 이웃들도 있었다.
어렸던 나의 아이들도 어느새 훌쩍 커서 모두 건강하니 잘 장성해주었고, 각자의 맡은바 영역에서 열심히 생활들을 잘해나가고 있다.



사실 여전히 나는 부자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의 행복저금통엔 달란트가 쌓여가고 있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자활이지 않을까...



오늘도 난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기 위해 열심히 행복의 운전대를 돌리고 있다.
우리사회의 소외계층이 존재하지 않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난 달린다.
너른 지평선 들녘으로 오늘도 빠알간 노을이 지고 깨끗한 세탁물을 들고 행복의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계속해서 난 내일도 열심히 달릴 것이다.



나의 꿈은 어디에 있느냐 묻는다면 난 이렇게 답할 것이다.
“꿈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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