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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의 삶을 꿈꾸며
  • 년도2013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나향자
  • 조회수1,645
*자활수기집 제9호(희망의 사다리)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선 '나향자 님'의 이야기 입니다.

또 다른 나의 삶을 꿈꾸며...


이른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저 희망찬 태양을 보라.”

어김없이 오늘도 멈추지 않고, 모든 것들을 거침없이 뚫고서 빠끔히 얼굴을 내밀어 대는 저 찬란한 태양을...
나는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내 가슴속 깊이 신선한 공기를 들이 삼키며 약속해 봅니다. 오늘 이 시간을 감사하며,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내가 꿈꾼 희망을 향하여 앞으로 뛰어 나아가리라고...

20여년 전 2년간의 열애 끝에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과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결혼생활은 평범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남편은 작은 운수회사에서 택시기사로 근무하였습니다. 가진 건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살림을 늘려가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들도 셋을 낳아 우리가족은 5명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개인택시를 바라보며 열심히 가족을 위해 근무를 하고 있을 즈음, 남편의 단 한 번의 실수로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며 긴 시간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남편의 잘못으로 음주운전에다 인사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 남편의 택시 면허가 취소되었고 피해자와의 합의도 원만하지가 않아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법정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소송비용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힘든 상황에서 억울하지만 합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변 동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변의 많은 도움으로 피해자와 합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직장을 잃어버린 남편은 성격도 내성적으로 변하고 주로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아야 하는데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남편은 점점 술만 늘어갔고, 남편의 실직으로 생활도 엉망이 되어 빚도 점점 늘어갔습니다. 이 와중에 남편은 몸에 이상이 생겨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위와 식도사이에 상처가 생겨 출혈이 계속 있었고 수혈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치료가 잘 되어 퇴원을 하였으나 당뇨와 합병증으로 인해 힘든 일은 못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으나 오랫동안 살림만 하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곳을 전전하다 지역자활센터에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가 희망지역자활센터를 처음 방문한 것은 2008년 1월 초, 그날은 한겨울 한파로 인해 날씨마저 나를 움츠려들게 하는 무척 추운 날이었습니다.
처음 상담을 하게 된 팀장님과 진솔하고 따뜻한 이야기 끝에 센터의 흐름과 사업체들이 하는 일 등등을 이야기 해 주시면서 “전의감사람들”이란 사업체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전의감사람들이란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하는 의약을 맡아 관리, 취재하던 관청”을 뜻하는 말로 임금님께 진상하는 진상품을 만들 듯 모든 물건들을 신중하게 골라서 정성을 다해 고객에게 전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뜻이 마음에 들어 나는 전의감사람들 사업단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업단 참여가 결정이 된 후 센터장님께서 나의 이력서를 보시더니 ‘여사님은 아들이 세 명이나 되네요. 많이 힘드시겠습니다. 열심히 한번 해 봅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우리 아들들을 위해서라도 정말로 열심히 하겠다고...
그리하여 전의감사람들이란 사업단의 한 일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전의감사람들 사업단에서 처음 만난 사업단 대표님, 총무님 그리고 사업단 식구들이 동생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면서, 체계적인 운영방식과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차분하게 가르쳐 주고, 하나하나 세심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처음엔 긴장하고 힘들기 마련인데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마음 써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기계나 장비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스러울 때 살며시 옆에서 하나씩 가르쳐 주었고, 나도 열심히 배우고 익혀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업단 식구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매일 메모도 하고 암기도 해가며 익히기 시작했더니 차츰 기계들의 작동 법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업단에서는 배즙, 양파즙, 포도즙, 칡즙, 흑마늘즙, 홍삼액등을 가공하여 만들어 냅니다. 모든 제품들은 추출기의 압력과 온도를 조절해 가면서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 하고, 제품의 맛을 보며 평가하고 또 연구해서 최고의 맛을 내기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달, 두달... 1년, 2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시간에 비례해서 이젠 건 강즙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고, 서서히 자활공동체 창업에 대한 욕심도 키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품생산만 잘 생산해 낸다고 해서 창업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갈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사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어서 겁도 났고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마침 그때 센터에서는 자활공동체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창업자를 위해 “자활공동체 예비창업자 교육”에 참여 하도록 하여, 자활공동체에 대한 지원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창업에 대한 비전을 세워보면서 ‘그래! 한번 도전해 보자’ 하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2011년 1월 14일 전의감사람들 오치점 개업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센터의 센터장님을 비롯한 여러 팀장님들, 우리 가족들과 형제들, 오랫동안 힘이 되어준 지인들 모두 개업식에 오셔서 축하의 말씀과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한 아름 안겨주고 가셨습니다. 개업식이 끝난 후 난 나의 꿈을 꾸기 시작한 그 곳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내 가게를 가지게 되었다는 기쁨과 그 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본 사업자등록증에 쓰여 있는 ‘공동대표자 나향자’를 보며 책임감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 왔듯이 앞으로도 남을 속이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믿고 신뢰 해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진실 되게 다가가면서 전의감사람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내 삶을 걸고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며 열심히 살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자활공동체 창업 후 8개월이 지난 지금은 나의 생활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큰아들은 군대 제대 후 복학하였고, 둘째도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어깨를 짓누르던 빚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이제는 조금이지만 저축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던 집도 작지만 월세가 아닌 전셋집을 마련하여 최근에 아들들과 함께 이사도 하였습니다.

제가 희망자활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자활공동체라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신 희망지역자활 센터장님, 실장님, 팀장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정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저 여기에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자활공동체 하나하나를 일구어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계획서와 설계가 필요한지, 모든 면에서 부딪치고, 수정 해 가면서 우리들에게 꼭 성공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마음 고생한 센터장님을 비롯한 자활가족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실망시키지 않고 열심히, 힘껏 뛰어 나아가겠습니다. 지금처럼 믿고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 아들들. 우리 세 아들들이 없었다면 제가 해낼 수 있었을까요? 저에게 항상 용기를 북돋아 준 세 아들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로 살기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큰 아들 나의 꿈! 둘째아들 나의 희망! 셋째아들 나의 사랑!
엄마는 너희들이 있어 또 다른 삶을 꿈꾼단다.
아들들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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