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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 년도2012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권미옥
  • 조회수1,772

자활수기집 제9호(희망의 사다리) 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선 '권미옥 님'의 이야기 입니다.



화해

 

시원한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날리고 파란 하늘이 마음마저 평온함을 가져다줍니다.
문득 뭉게뭉게 흐르는 새털구름 속에 몇 년 전 힘겨웠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아마 그날도 오늘처럼 파란 하늘에 마음을 빼앗겨 있을 때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딸아이의 비명과 울음에 놀라 집으로 달려왔을 때는 이미 집달관들의 손에서 빨간 딱지가 집안 군데군데 붙여지고 있었습니다. 숨이 탁 막히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원망했습니다.

친정집과 우리 집 두 채를 경매에 넘기고, 작은 월세방으로 이사를 하던 날도 파란 하늘에 구름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유유히 흐르며 나를 비웃는 듯 했습니다.
아이들은 이사한 집이 창피하여 친구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대문을 나서지 못하고 집 이사 했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살던 아파트로 들어갔다가 다시 등교를 하고, 난 나대로 죽을 만큼 힘들어 집밖 출입도 금하고 대인 기피증에 우울증까지 겹쳐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당에 눈이 쌓여도 현관문을 열어보지 않으니 눈이 오는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을 즈음에 난 일어서야 했습니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랑하는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들이 있기에...

그러던 어느 날 교회권사님 소개로 자활에 근무하시는 분을 알게 되었고, 구청에 신청을 하면 일을 할 수 있다는 소리에 창피함을 무릅쓰고 찾아가 신청을 하고 드디어 자활에 근무하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영등포노인복지관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발마사지 교육을 받은 후 경로당으로 처음 출근했을 때는 어르신들의 발을 만진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발을 씻지 않아 때가 밀리고 무좀으로 살이 벗겨지고 냄새가 나는 발을 만질 때마다 헛구역질에 정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친정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친정집을 경매로 넘긴 후에 엄마는 지방 친척집으로 가시고 동생은 월세방을 전전하며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후로 죄송한 마음에 연락도 두절하고 살고 있었는데 내 엄마는 내버리면서 어르신들에게는 거짓으로라도 웃어야 되고 보살펴드려야 된다는 생각에 나의 이중성을 보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어르신들을 대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지 진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어르신들에게 봉사하려면 먼저 친정엄마께 용서를 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난 용기를 내어 전화를 드렸고 엄마는 한 없이 우시며 “열심히 살면 된다.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아이들 생각해서라도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몸만 건강해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엄마와 화해하고 나는 마음도 몸도 하늘을 날 듯 가벼워 졌고, 어르신들에게도 친정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요양병원에 일하러 가야할 때는 하루 전부터 힘들어 했었는데 지금은 “할머니 이리오세요. 제가 시원하게 살살 만져드릴께요.” 하며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 합니다.
수줍게 웃으시며 “말복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시원하지” 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시고, 손도 잡아주시는 어르신들과 하반신을 움직이시기도 힘드신데 재활의 의지로 발마사지를 받으시면 좋아지는 것 같다는 일념으로 서너분의 부축을 받으시면서도 매주 우리를 보러 휠체어에 앉아 힘겹게 오시는 의지를 보며 나는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데 무엇을 못하나 싶어 죄송스러워 더욱 열심히 손을 움직이게 됩니다.

무좀이 있으신 발가락만 만져드리면 “복 받아 감사”를 외치시는 감사 할머니, 우리를 볼 때마다 더 있으라고 가지 말라며 붙드시는 할머니, 딸 같은 내가 아프고 힘들다며 걱정해주시는 할머니까지...
이런 천사 어르신들이 나를 북돋아주신다. 힘내라고 주저앉지 말라고, 할 수 있다고...
내가 노인복지관으로 취업을 하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친정엄마에게 죄지었다는 핑계를 대며 연락도 없이 마음에 큰 담을 쌓고 지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복지관에서 자활근로사업을 통해 일을 하면서 어르신들 덕분에 친정엄마의 진심도 알게 되었고 더욱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외적인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오는 것이다. 외적인 환경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제 삶에 희망을 일깨워주고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게 해준 자활근로사업이 있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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