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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은 또 다른 긍정을 낳는다
  • 년도2012
  • 기관명강동지역자활센터
  • 제출자김양희
  • 조회수1,936

자활수기집 제9호(희망의 사다리) 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입상 '김양희 님'의 이야기 입니다.



긍정은 또 다른 긍정을 낳는다


눈을 뜨면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햇살은 하루의 시작이며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빛이었다. 어느 해 부터인가 그 아침햇살은 언제나 따스하지도 밝지도 않았다. 그 햇살은 어둠의 긴 그림자가 되어 버렸다.
“막내 또 우냐?”
“고모 또 우는구나!”
근 4년이나 들어오던 말이다.

포도 과수원집 8남매의 막내인 나는 친정 모임에 가면 외톨이가 된다. 의젓한 아들과 예쁜 딸을 대동하고 가도 결국은 먼저 울고 마는 나로 인하여 친정 식구들은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며 분위기가 침울해 진다. IMF 때 큰 언니가 운영하던 기업은 부도나며 보증을 섰던 친정 형제들도 채무에 시달리게 되어 신용불량에 무직으로 서로 자기 가족 먹고 살기도 바쁘니 도움을 요청할 형제도 없고, 혼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학비와 생활비 마련도 막막하기만 하던 차에, 넷째 오빠 내외가 동사무소에 가면 우선 일 할 곳을 소개해 주어 굶진 않을 테니 문을 두드려 보란 말을 하셨다.

그런 곳은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이 두드리는 곳이란 고정관념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환경이, 삶이, 세상이, 주변상황이, 내가할 수 있는 선택이 그 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의 오만과 편견을 깨치는 것만이 내 가정을 지킬 수 있다는 용기를 내어 「주민센터」로 향했다.

나의 생활은 학교 졸업 후 20여 년 간 산행 이외에는 승용차로 움직이는 것이 생활화된 풍족한 편이었지만, 남편의 좋지 못하고 어리석은 여러 행동들로 인하여 이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갑자기 변한 환경에 내 몸은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이상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에서는 백혈병인거 같다며 골수검사까지 하였고, 그 와중에 또 다른 부위에 암초기 증상이 나타나 수술을 하고나니 생사에 대한 두려움과 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불안에 몸무게는 평소보다 7kg이상 빠져 42kg의 흉물스런 괴물로 변해버린 것 같고, 불편함을 모르고 자라던 아이들도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남편의 외도는 점차적으로 본인의 정당화를 위하여 폭력과 의처증까지 진행되는 슬픈인간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딸이 9번 수술하는 동안 2번만 수술실 앞을 지킨 아빠였다. 인간의 도리가 아닌 길을 선택하는 남편과 이혼하고 그 많던 재산을 버리고 두 아이를 선택한 나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큰 가게를 내어 1년을 경영하던 중 설악산 암벽등반을 하다 추락하여 여러군데 골절상을 당하는 대형사고가 나 헬기로 이송되었는데 며칠 후 깨어나니 하반신과 오른 팔을 못 쓸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했을 땐 눈을 뜨기조차 세상이 싫었다.
3개월간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고통과 대소변을 받아내는 아픔과 고행을 이겨내고 6개월간의 재활치료로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나니 9개월의 공백으로 가게는 원금도 못 건지고 문을 닫고 말았다. 몸이 온전치 못하여 생활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하는 마음에 친정언니에게 남은 재산을 빌려주고 얼마는 언니의 소개로 에너지 벤처회사에 투자를 하였는데 언니가 유방암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빌려준 돈 마저 받지 못하고 투자했던 회사는 사업주가 투자자들의 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여 감옥에 가 있는 상황이 되어 하루아침에 쌀도 없는 날들이 시작되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퀘퀘한 방에서의 생활로 어둠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만 갔다.


인생을 포기하려는 마음이 수시로 들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이 있기에 몸을 추스려 주민센터에 들려 자초지종 말하기로 하였다.
‘그래!’
‘그 많던 재산과 백년해로하겠다던 짝도 잃은 마당에 나에게 자존심은 사치야.’
‘삶은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에게 긍정의 길을 열어주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큰 용기를 내어 동사무소를 찾아가니 담당 사회복지사의 너무도 따뜻한 안내에 자존심을 백리 뒤로 내 던져 버렸다. 주민센터를 나와 근 일주일을 기다리다 보니 2009년 5월 4일 「강동지역자활센터」에서 상담하자는 전화가 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밤을 지새우고 강동지역자활센터로 가 사회복지사님과 상담을 하는데 눈물은 왜 또 그리 멈추질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느 사업단에서 일하고 싶으세요?”
“장애인 통합파트는 딸이 9번이나 수술을 하던 기억이 살아날까봐 싫고, 요양재가팀은 치매1등급 판정을 받고 만 2년째 요양병원 병상에 누워계신 친정엄마를 섬기지 못하는 죄책감과 그 모습이 선해 못할 것 같고, 제과제빵과 도시락 파트는 식당사업을 하다 실패한 기억 때문에 싫습니다. PET과정을 수료하였기에 아이들 심리치료와 상담을 통하여 함께 놀아주고 생활할 수 있는 복지시설팀에서 순수하고 맑게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싶습니다.” 과감하고도 당당하게 말을 하고 나오니 내가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하고 나왔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핑 돌았다.

일주일 동안 자활센터 사무실로 출근하여 교육을 받고 「강동꿈나무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다. 센터에 방문을 하여 센터장님과 30여분 동안 대화를 나누어보니 지역의 공부방으로 배움과 돌봄을 베푸는 센터장님의 마인드에 나도 모르게 중독되고 말았다. 너무도 낙후된 시설에 깜짝 놀랐지만 그 날 이후로 센터의 흐름에 맞춰가며 함께 행동하는 자로 남으려 노력하게 지내왔다. 아이들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아이들이 내 곁에 항상 머무르게 되었다. 월차휴무를 하고 출근하면 아이들은 너무도 나를 반겨주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그 해맑은 표정과 말 한마디에 힘든 순간들이 사라진다. 일주일에 한 번 씩 가는 나들이 길에서는 서로 나의 손을 잡고 가려고 하며, 손을 잡은 아이는 기뻐하고 잡지 못한 아이는 토라져 가는 행동들은 정말 아이들답다. 주 1회 나들이 가는 것은 나의 오랜 취미였던 사진기를 다시 꺼내는 계기가 되었다. 2년 동안 담아 예쁜 사진집으로 만들어주니 본인들 활동모습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지는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여 뿌듯하였다. 「우등생지역아동센터」로 파견되던 날 꿈나무아동들은 울며 가지 말라고 나를 붙잡아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도 전화나 문자로 본인들의 근황과 자랑거리, 사소한 것들을 내게 전해준다.
이곳 「우등생지역아동센터」로는 2011년 1월에 파견되어 일을 시작하였다. 「강동종합사회복지관」 내 자치기관으로 돌봄을 받는 29명의 아동들은 기관의 많은 혜택을 받는다. 급식도 타 기관과 다르게 직원들의 식단과 같이 균형식을 하며 구청과 연계하여 좋은 프로그램과 강사진들로 이루어진 수업과 활동을 하다 보니 안정적인 학습이 이루어진다.

또한, 매월 요리실습과 현장체험학습 프로그램 등은 아이들과 좀 더 많은 대화와 교감이 이루어져 부모님이 해 줄 수 없는 부분을 충족시켜 주기에 함께 활동하는 나로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내 작은 힘이나마 아이들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이쯤에서 나의 사랑스런 아들・딸을 자랑해야 할 거 같다.

사랑스럽고 예쁜 딸에게 재작년 여름방학 기간에 엄마가 어찌 생활하나 체험해 보라고 이틀을 데리고 와서 함께 활동을 하게 했더니 엄마의 힘듦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예쁜 행동들을 많이 하니 기쁘기 그지없다. 올 봄 서울시 고등학교 수기공모에 당첨되어 1등으로 50만원의 상금도 받았다. 이혼했을 때는 엄마도 아빠처럼 미웠는데 아팠던 것을 이해하고 아동센터 활동을 체험해 보니 엄마가 존경스럽고 키워 주심에 감사하다고 자주 말을 한다. 아들은 언제나 듬직하여 나를 챙기고 따스한 말 한 마디로 무거운 어깨가 올라가도록 하였다. 교회에서 장애아동을 6년이나 업어오고, 데려오는 봉사도 하였다. 넉넉함만을 알고 자란 아들이 갑작스런 환경변화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한창 사춘기에 나쁜 길을 가지 않으려 혼자 애쓰고 견뎌내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다독거려준 의젓하고 멋진 아들이 3월 22일 군대를 갔다. 요즘 자주 어느 한 구석이 언제나 허전하고 비어있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아들이 제대 할 쯤에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맞이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거듭나야겠다.


복지시설팀에서 근무하며 나름으로 연계활동을 많이 해 왔다.
현재 생활을 받아드리니 풍족하던 시절에 맺은 인간관계를 활용하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을 찾아보았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임인옥에게 자원봉사를 부탁하니 단걸음에 달려와 여름방학 동안 무료로 아이들을 위해 미술심리치료를 해 주었으며, 등상장비제조회사 김이사님은 운동에 필요한 물품을 후원하고, 실내암벽장을 운영하는 센터장님은 꿈나무 아이들에게 주 1회 암벽장에서 운동 할 수 있게 제공했으며, 운동감각이 뛰어난 다솜・다운 자매에게는 클라이밍선수로 키워볼 생각이 없냐는 나의 질문에 뜻을 거절하지 않고 기쁨으로 받아들여 개인레슨도 해 주어 1년 동안 후원을 했다. 그 결과 전국 청소년 클라이밍 대회에서 8등을 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우투자증권 직원들 중 뜻을 같이하는 직원들끼리 월급의 1%를 기부문화로 쓰는데 이번 년도 봄에는 연계하여 500만원의 성금과 인적자원을 연계하였다. 그러한 프로젝트를 꿈나무 공부방 선생님들이 추진하도록 밀어주어 성과를 내게 됨을 감사드린다. 아마도 아이들을 돌보는 일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과의 가족적인 관계는 사람사는 세상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기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떠한 표현으로도 내 마음을 표현 할 방법이 없다.


지금 내가 누리는 혜택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강동지역자활센터는 내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기반이 되었으며, 2009년 11월 초에 강일동 국민임대아파트(21평)에 입주하게 되는 큰 기쁨도 누렸다. 보금자리에 공부방 선생님들이 방문을 해 주셔서 작은 집이 웃음과 젓가락 소리로 활기찬 집으로 채워 주시고 집들이 선물로 받은 토스터기는 오늘도 아침 식사와 간식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AP Now(Active Parenting Now - 적극적인 부모역할 훈련) 과정은 현재 공부방 일을 돕는 것과 나의 두 자녀를 돌보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올 해 또 하나의 영광이 돌아왔다. 「희망의 인문학」 팀에 선정되어 4과목의 강의를 듣고 있다. 부족한 나를 채우는 좋은 계기이다. 특히나 문학교수님은 강의 전 그 주의 사회적 이슈를 잠시 다루고 강의를 시작하는데 그 부분이 너무도 좋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어 아침에 신문으로 하루를 여는데 교수님의 화두는 나를 흥분케 한다. 또한 뮤지컬 공연과 영화관람, 전진대회 등은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밑그림이자 가장 중요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열심히 재활을 위한 바탕을 만들어 주는 자활센터가 있음에 낙오자가 되지 않고 오늘도 미래를 위한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

꿈을 꾸는 자에게는 꿈일 뿐이지만, [꿈을 향해 노력하는 자에게는 현실이 된다.]라고 생각하며 군대 간 아들을 떠올리고 몰려오는 잠을 새며 공부하고 꿈이 현실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기본이 너무도 나약한 지금의 현실이기에 자그마한 것부터 이루어 나가기로 하였다. 지역아동센터에 근무하기에 업무와 아이들과의 모든 관계를 위하여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2012년에 두 개의 자격증을 취득한다. 자격증 취득 후엔 2년 반 동안 지역아동센터에서의 경험을 모태로 배우고, 느끼고, 체험한 것을 십분 발휘하여 꼭 필요한 아동의 엄마이자 보육교사가 되어 새로운 나로 거듭 태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소속은 달라도 함께 일하고 웃음을 찾게 해 주고, 긍정의 마인드로, 파이터로 만들어 준 「강동종합사회복지관」과 「강동지역자활센터」 및 「우등생지역아동센터」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함을 전한다.

[긍정은 또 다른 긍정을 낳는다!]는 말을 되새김질하며 오늘도 긍정의 길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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