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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 년도2012
  • 기관명강동지역자활센터
  • 제출자이종해
  • 조회수1,974

자활수기집 제9호(희망의 사다리) 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은상 '이종해 님'의 이야기 입니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우리집 뒤 고덕천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풀들이 시절을 만나서 열심히 피고 지곤 합니다. 지루하기만 했던 장마가 끝나고 어느덧 입추도 지나 아침저녁에는 서늘한 바람이 부네요! 세월은 참 빠르기만 합니다.
얼마 전에 한부모 가장이 되어서 강동지역자활센터에 들어온 것 같은데, 벌써 9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네요! 내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고 여유로운 미소와 넉넉함도 생긴 중년의 여인이 되어 있습니다. 아픔과 슬픔을 이기기에는 세월은 참 좋은 친구입니다!

저는 평범한 가정을 가지고 행복하게, 두 자녀를 키우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저희 남편은 자수성가하여 조그만 사업을 하였습니다. 열심히 일 하였기에 사업은 점점 번창해 갔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경제금융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한 사업이라서 저희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어음 부도 쪽지가 날아오고 하루아침에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공장도 넘어가 버렸습니다.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나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습니다. 열심히 일 한 결과가 부도로 돌아오고 보니 남편은 낙심하고 힘들어 했습니다. 


그 와중에 저희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보니 대장암 3기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하늘은 노랗게 변해버렸고, 땅은 저 바다 밑으로 꺼져 버리는 듯 했습니다. 앞도 보이지 않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눈앞에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돌보아 줄 수 없는 아이들이기에 엄마라는 책임감으로 일어났습니다. 남편을 입원시키고 여러 가지 검사와 검사를 받았습니다. 결국 수술실로 들어가는 남편을 구해 줄 수 없는 한심한 나를 보며 눈물만 나왔습니다. 


수술은 잘 되어 남편의 병세는 호전되어 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돈도 다 떨어지고 살아갈 힘도 없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살아야 하기에, 아이들을 길러야 하기에 또 힘을 내서 전셋집을 빼고 월세 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과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1년 만에 남편의 병이 재발하여 투병생활을 1년 넘게 하였습니다. 투병생활의 어려움도 이기기 힘들었지만, 남편 없이 살아가야 하는 미래에 대한 염려가 나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아들은 중2학년 딸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과 참담한 현실을 극복해 나갈지 막막했습니다. 부모와 형제들의 도움을 의지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정말로 이제는 기댈 곳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도 없고, 그래서 동네 식당에 찾아갔습니다. 해보지 않던 일이라서 힘이들고 허리도 아프고 자주 몸살이 났습니다. 


몸이 너무 아파서 몇일 쉬고 있는데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려운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강동지역자활센터에서 도시락 배달하는 일을 해 보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식당에서 일 하는 것 보다는 수월 할 듯하여 2002년 7월에 사랑나눔지원사업에 참여 하게 되었습니다.


자활센터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사업단이 많지 않아서, 독거노인들과 결식아동 도시락을 배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걸어 다니면서 배달을 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올 때면 힘이 들었지만 보람을 느꼈습니다.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나보다 더 어렵고 쓸쓸하게 살고 있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내 삶만 어려운 것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쳐먹고 열심히 일 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 하다보니까 영세민 전세대출자금도 가능하게 되어, 대출을 받아서 방이 2개짜리인 전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셋집으로 이사를 해서 아이들과 편안하게 생활하게 되어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과거의 아팠던 기억들도 조금씩 잊혀져 가고 삶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한식조리사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머리에는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결국 2번 만에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2005년 3월에는 도시락사업단이 생겨서 매장에서 도시락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도시락을 만들게 되었을 때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내가 어렵게 살아서 남을 도울 형편이 되질 못해서 마음에 서운함이 있었는데, 안타까운 이웃에게 도움 주는 일에 나의 손으로 만든 음식을 납품하는 일이 나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졌습니다. 


도시락 매장은 코오롱 상가 지하에 마련되었고, 8명의 참여자들이 솜씨를 발휘하여 음식을 맛있게 만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할 때는 졸린 눈을 비비며 간신히 일어나 캄캄한 새벽길을 나와야 하기에 힘들었지만,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서 포장해 나가는 도시락을 보면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도시락을 드실 어르신들과 아이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만든 도시락을 드시고 짧은 편지를 보내시거나, 강동종합사회복지관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는 어르신들이 늘어만 갑니다. 독거노인들은 하루 양식이 되는 도시락을 손꼽아 기다리고, 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신다고 하니, 눈물이 나고 더 정성껏 만들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한 끼의 도시락으로 하루를 드셔야 하기에, 반으로 나누어서 저녁으로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를 참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서 더 열심히 도시락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드는 일이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모든 일에 실수도 있고 튀김하다가 데이기도 하고, 칼에 베이기도 하고 여기저기 다치는 일이 많지만, 세월이 흘러 흘러갔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시간이 흐르니 음식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 솜씨도 많이 늘었습니다. 


나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이라 외롭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웰빙으로 맛있게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서 사업단이 점점 번창해지고 참여자도 늘어났습니다. 인근 사무실과 공장과 점포들을 돌면서 홍보를 꾸준히 한 결과 도시락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 주문전화를 받고 부지런히 여기저기로 배달을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배달을 많이 시킵니다. 비가 와서 배달하기에는 번거롭지만 기쁜 마음으로 배달을 합니다. 조금 먼 거리에 납품을 하게 되어도 자전거로 배달을 합니다. 조금은 힘이 들고 덥고 춥지만 잘 견디고 오늘까지 왔습니다. 맛있는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해 주는 일이 즐겁기만 합니다. 장애인시설에 밑반찬도 납품해주고, 이웃상가에서도 주문해서 먹고 나서 맛있다고 할 때면 참 행복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 했더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먼저는 서울시에서 희망플러스통장에 당첨되었습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통장이 생겨서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매달 10만원씩 적금이 들어 갈 때마다 희망도 2배로 늘어만 갑니다. 어떤 때는 나에게 일어난 기쁜 일이 꿈인가 생시인가 믿겨지지 않아 통장을 꺼내어 가슴에 꼭 안고 다짐을 합니다. ‘더욱더 열심히 살아서 3년 동안 이것을 꼭 지켜내자!’ 그러기 위해서는 재무컨설팅과 금융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교육은 몸이 힘드니 지루하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했지만, 돈을 관리하는데 유익한 정보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꼭 지키고 싶은 결심을 유지하기에 참 좋은 교육 이었습니다. 


재무 상담을 받을 때에는 가계부 쓰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태껏 가계부를 쓰지 않고 생활한 터라 가계부에 대한 흥미가 없었으나, 금융교육을 통해서 이래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가계부를 잘 씀으로서 나의 인생도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수입이 적으니까 생활하다보면 이래저래 낭비하지 않아도 빠듯하고, 저금하기 힘드니까 포기하고 가계부는 쓸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예쁜 가계부를 받고 보니 쓰기에 편리하도록 잘 정리되어있었습니다.
계획도 세워가며 쓰게끔 되어 있어서 열심히 쓰려고 합니다. 돈 쓴 것을 적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내 계획을 적는다는 생각으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내 가게를 갖고 장사하는 것이 꿈입니다. 그 꿈을 향해 열심히 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업단에서 공동체를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공동대표로 이끌어 갈사람 중에 내가 뽑혔다는 것도 더욱더 자랑스럽습니다. 사업장을 낼 매장을 물색하러 이곳저곳 매장들을 다녀 보았습니다. 가격도 크기도 상권도 좋은 매장을 얻기란 참 어려운 일 이었습니다. 틈이 나는 대로 다니던 중 몇 달을 다녀서 매장을 계약하고, 필요한 집기를 구매하고 참 힘든 일 이었습니다. 어떤 것으로 구매할지 구상하며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지 머릿속에 그려보며 쓸고 닦고 그렇게 시작 했습니다. 

매장의 위치가 시장 끝 쪽이라서 유동인구는 많지 않지만 홍보도 열심히 하고, 깨끗하고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공동체 출범식날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구청장님도 와주시고 우리구의 어르신들이 많이 오셔서 관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잘 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오픈을 하고 손님을 맞아보니 이제야 내 가게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왔더니, 내 꿈에 더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강동지역자활센터에서 내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살아온 날들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몇 년 동안 자활에서 성실하게 일 한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하여 자립도 할 생각입니다. 소문난 도시락집을 만들어서 그동안 도와주시고 살펴주신 강동지역자활센터 센터장님 실장님과 사회복지사선생님들께 자랑이 되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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