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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만족하고 내일을 꿈꾸자
  • 년도2012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김화연
  • 조회수2,405

자활수기집 제9호(희망의 사다리) 에 실린 자활성공수기 은상 김화연 님의 이야기 입니다.


현실에 만족하고 내일을 꿈꾸자

어느새 한 해의 반이 지나고 가을의 바람이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 시간은 지나 벌써 한 해를 마무리 지을 준비를 할 때가 되었다. 내가 올 한 해 동안 무엇을 했을까 뒤 돌아보니 년 초에는 여러 가지 계획과 다짐으로 시작했는데, 아직도 이루지 못한 계획들이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남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지...
벌써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다. 가을 바람과 함께 지난 날들을 회상해 본다.
그리 평탄한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의지하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지금 내 옆에 곤히 자고 있는 내 남편과 만난 것은 내게 있어서 제 2의 인생을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인것 같다.

결혼 전 교회 전도사님께서 청년을 소개시켜 주신다고 하셨다. 사실 기대 반 부담 반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와! 전도사님 옆에 핸섬가이가 앉아 있었다. 너무 잘생기고 멋있어 보였다. 부드러운 말투도 마음에 들었다. 그 때부터 나는 사랑의 콩깍지가 씌어졌는지도 모른다.(지금도 여전히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은 채...)
남편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혼자서는 어딜 가기도 힘들어해서 내가 꼭 옆에 데리고 다녀야 한다. 친정 엄마는 남편의 불편함을 알고 이혼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가족을 이룬 이상 헤어지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며칠 몇날을 눈물로 지새우고 속상해 했다. 그래도 내 마음을 꺾을 수 없자, 아들 하나 더 얻었다 생각하고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딸의 인생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을 텐데도 용서를 해 주셨다. 나는 언제나 엄마에게 죄인이다. “엄마, 열심히 잘 살도록 할께요. 미안합니다.”

남편은 나에게 미안해하고, 부모님께 죄송해하며 많이 힘들어한다. 남편이 한 번씩 농담 섞인 말로 ‘이혼하고 싶으면 말해. 그런데 골방하나만 줘라’라며 쓴 웃음을 짓는다. 우리는 웃으면서 얘기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무거운 돌덩어리가 통로를 꽉 막은 듯 숨을 쉴 수가 없는 기분이 든다.
시댁에서는 불편한 아들을 안쓰러워하기보다는 내게 떠넘기고 한 숨 돌린 기분인가 보다. 이해를 해 보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오해하고 있으면 좋겠지만......) 그곳에서 남편이 얼마나 외롭게 살아왔을까 가슴이 아파온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많이 애처로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를 내 품에 안고 살아가리라 굳게 다짐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남편 옆에서 일일이 다 챙겨주고 함께 활동을 해야 했고 사소한 것까지 그를 생각해 주고 기죽지 않게 배려해 주어야 했다.
처음에는 시댁에서 시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1998년 IMF때 시어머니가 주신 800만원을 들고 분가하게 되었다. 그땐 모든 물가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우리는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보증금 800만원으로 지하방 1칸을 찾아 계약을 했다. 캄캄하고 습하면서도 화장실은 얼마나 높던지...... 곰팡이 냄새도 나고 아들에게는 정말 미안했다. 당시 내 마음은 그 방만큼이나 캄캄했었다. 7개에 천원하는 밤과자가 그렇게 먹고 싶어도 몇 번이고 망설이며 꾹 참았던 기억도 난다.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못 살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그런 힘이 있었는지 나 자신을 생각해도 대견할 정도이다.
우리는 15년 동안 7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지하 방에서 지하방으로 벽에는 곰팡이, 방바닥에는 물기가 고여 있어 자고 일어나도 늘 피곤하였다. 장판 밑에 신문을 깔아 습기를 제거하고 비가 많이 오면 방에 들어온 물을 퍼내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웃으면서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언제나 물 먹은 솜처럼 내 마음도 내 육체도 점점 무거워져만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천호4동에 살 때였다. 주민센터에서 복지사 선생님이 강동자활센터를 소개해 주셨다. 그리하여 지금의 맛조아 제과제빵에서 자활훈련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빵 만드는 과정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내가 만든 빵들이 오븐에서 먹음직스럽게 구워져 나올 때면 성취감도 느껴졌다. 지금도 빵을 만들 때면 신중을 기해 만들게 된다. 내가 만든 빵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젠 맛조아 제과제빵에서 빵과 케이크를 만드는 것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늘었다. 제과점을 지나갈 때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케이크의 데코 된 모양에 꽂히게 된다. 이것이 직업병이겠지…
오늘도 어떻게 하면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빵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
맛조아에 있으면서 사회생활에 대한 대처법이라 할까?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지내면서 여러모로 사회 경험을 많이 쌓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에서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고자 열심히 노력하며 생활했다고 자부한다. 또 날마다 허겁지겁 정신없이 생활하다 이제 조금은 안정된 생활을 하며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2009년에는 여러 가지 행복한 일들이 있었다. 주택공사에서 제공한 매입임대로 입주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기뻤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 것도 좋고, 햇볕이 잘 들어오는 아들의 방이 생겨서도 좋았다. 아들은 집 구경시켜 준다면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 마음도 뿌듯하였다. 벌써 3년이란 시간을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남편의 눈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어서 속상하다. 그래도 내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의지가 되는 남편과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내 아들, 우리는 이렇게 오늘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요즘 동료들 중에 인문학 강좌를 듣는 이들을 볼 때면 나도 강의를 듣던 그때가 생각난다. 경희대 학생으로 입학식도 하고, 졸업사진도 찍고 학사모도 써 보았다. 서울시에서 개최한 인문학강좌 강의를 듣게 된 것은 내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도전을 받기에 충분했다.
화요일, 목요일이면 강의를 하나라도 빠지지 않고 들으려고 열심히 청강하였다. 졸음이 올까봐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강의 내용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필기하며 집중해서 들었다. 일이 바빠서 어쩔 수 없이 강의를 빠질 경우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강의를 듣고 온 동료들에게 무엇을 들었냐고 묻기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철학 교수님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나 자신을 사랑하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내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나의 자아를 찾으려고 발버둥치는 나를 보게 되었다. 아직도 그 말을 실천하기에는 어렵지만 나를 사랑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인문학 강의를 듣는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다시 강의를 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또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희망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저소득층 가정에 저축을 통한 목돈 마련의 기회로 저축액의 두 배를 적립해 주택이나 자녀 교육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강동자활센터에 일하고 있다는 재직증명서를 떼어 서류를 들고 주민센터로 급히 달려갔다. 1, 2차 심사와 면접을 마치고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여간 신경이 쓰이는게 아니었다. 두 달 정도가 지난 후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문자로 왔다. 보고 또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열심히 저축해서 매입임대 전세보증금을 일부 전환하고 임대료를 줄여 생활할 계획을 세워 보기도 했다. 매달 빠듯하고 힘들겠지만 나도 저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저축해 나가리라 다짐도 했다. 그렇게 매달 힘겨워도 희망 저축액을 채우다 보니 벌써 내년 9월이면 만기가 된다. 임대료를 줄일 생각을 하니 복권을 사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부푼 꿈에 행복해 진다.

강동자활센터에 있으면서 많은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성경구절이 생각난다. 열심히 살아가는 자에게 희망의 웃음도 찾아온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이제는 어떤 일들이 닥쳐온다 해도 용감하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관장님. 센터장님 외 여러 복지사 선생님의 배려와 관심이 나에게 큰 힘과 용기를 갖게 해 주었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항상 마음으로 감사함을 느끼며 지낸다.
내 어렸을적 꿈은 하얀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나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 내게 처한 상황에서 열심히 사는 것과 그리고 더 밝은 내일을 위해 웃으면서 나아가는 것 또한 꿈을 이루어 나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아직 나의 내일은 많이 남아 있으니까…
이후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다. 삭막한 이 세상에 마음의 위로를 줄 수 있는 따뜻한 상담자가 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봉사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밝게 빛나는 것처럼 나도 남을 위해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난은 나를 이길 수 없다. 행복은 언제나 내가 처한 현실에 만족하고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자의 몫이니까.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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