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행복도시락 최강종 대표를 만나다 | |||||||||||
사회적기업을 일구어가는 자활사업의 산 증인이라 불립니다 | |||||||||||
1999년부터 관악자활지원센터에서 자활과의 인연을 맺으며 살림터, 나눔후드뱅크, 나눔후드 그리고 중구행복도시락 센터장을 맡으시며 2008년에는 노동부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아 그야말로 자활에서 오로지 먹거리사업으로 사회적기업을 일구어낸 자활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최강종 대표. 지금도 바쁠 때면 토, 일요일 없이 일을 해내시지만 대표님을 만나면 각박한 세상의 사람의 이미지가 느껴지기보다는 온화하고 따뜻한 인정이 느껴집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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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최 대표님을 아시는 분은 <나눔후드> 등 오랫동안 먹거리사업단을 운영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왠 빵집이냐? 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 |||||||||||
A. 작년에 1호점을 열었고, 이제 2호점을 열었습니다. 제가 3년 전에 <중구행복도시락>을 시작하게 되면서 저희 도시락을 받는 결식아동들에게도 좋은 빵을 제공해보자는 생각으로 빵집을 열게 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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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우리밀이 비싼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밀 빵이 수지가 맞나요? | |||||||||||
A. 사실 가격에서 재료비는 그리 많이 차지하지 않습니다. 개당 일반 밀가루 가격보다 2,3백원 더 들이면 우리밀로 가능합니다. 그리고 일반 빵보다 조금만 더 받으면 되는 것이지요. | |||||||||||
Q5. 3년 정도 중구행복도시락을 운영하셨다고 하셨는데 처음에 비해 많이 발전하였지요? 지금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요? | |||||||||||
A. 현재 일하시는 분들은 24명이구요, 1년 매출이 10억 정도 됩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와 방학 때와 차이가 있습니다만 평시 에는 1일 600개 정도 도시락을 공급하고 있구요, 또 도시락 외에도 출장부페나 도시락판매 등의 일반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매출이 더 크지요. 4대 6정도 될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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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그러면 행복도시락과 해피바게트 2개, 이것이 모두 최 대표님이 운영하시는 것인가요? | |||||||||||
A. 그렇습니다. 회계도 통합해서 하고 있습니다. 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아 인건비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는 70%정도 지원받고 있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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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 어쨌든 성공적인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뭐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 |||||||||||
A. 저는 처음부터 인력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최소한의 인력만 사용했습니다. 5명이 할 수 있는 일을 10명이서 하게 되면 이후에 지원이 중단되면 5명이 그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좀 어렵게 시작했다고 할까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일하는 분들이 ‘이 센터는 우리 편이다.’ ‘이 회사는 내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곧 회사가 잘 되야 내가 잘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이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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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8.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갖게끔 할 수 있는 것인가요? | |||||||||||
A. 처음 행복도시락을 시작할 때는 사회적일자리로 참여자 8분이서 시작했는데 저는 이 분들에게 자격증을 다 따도록 했지요. 그래서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다 조리사자격증을 땄어요. 그리고 운전면허증도 따도록 해서 옛날 같으면 운전기사가 같이 가야 할 일도 지금은 스스로 하게 되니깐 그만큼 일손도 덜게 된 것이지요. 또 이사할 분이 계셔 방을 보러가야 할 일이 있으면 같이 알아봐주기도 하구요, 우리 자체적으로 마이크로크레딧을 만들어 초기 자금 3백만원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습니다. 50만원을 빌려가 1년 안에 갚으면 그 이후에는 100만원까지 빌릴 수 있게 하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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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1. 최 대표님은 오랫동안 자활과 인연을 맺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자활에서 일하시게 되었나요? | |||||||||||
A. 1999년부터 관악자활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후드뱅크 운전 자원봉사자를 구한다고 해서 찾아간 것이 성공회 봉천동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게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지금은 신자회장까지 하고 있지요. (하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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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2. 자활과 연을 맺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 |||||||||||
A. 저는 수도 없이 많은 장사도 해보고 망해보기도 해보았습니다. 또 호텔 관리실장으로 10여년 근무하기도 했구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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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3. 자활에 오셔서 후회하지는 않으시는지요? | |||||||||||
A. 왜 그런 생각이 안들었겠습니까? 4, 5년 전에 관악 <나눔후드>에서 일할 때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8개월간 드러누운 적이 있었지요. 시장보러 가다가 그만 차에 다리가 깔려 지금도 걷기는 하지만 달리기는 어렵지요. 그 때 사고로 지금은 장애 6급이 되었구요. 그 때 병원에 있으면서 드는 생각이 ‘이제 그만 이런 일하고 쉬라’는 메시지를 받은 것 같아 그만 정리하려고 퇴원해서 1년 정도 쉬고 다른 사업을 하고 있는데 모세종 대표가 찾아와서 행복도시락을 제가 해야 된다는 거예요. ‘대표님이 아니면 할 수가 없다’고 강요(?) 비슷하게 받았을 때 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는데요, 일하면서 ‘저 높은 데 있는 분 이 우리의 몸을 통해서 일 하시는 구나’ 하는 생각이 깊게 들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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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4. 역시, 신자 대표님다운 말씀이네요. 끝으로 오랫동안 자활에 계시면서 자활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 |||||||||||
A. 자활에서 일하시는 주민들에게 비젼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일을 열심히 하면 뭔가 이룰 수 있 다고 하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지요. 주민의 편에서 생각하고 주민의 편에서 일한다면 주민들이 자기 일처럼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회적기업도 제대로 정착이 되기 위해서는 공기업들이 사회적기업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공기업들이 사회적기업과 결연을 맺어 도와주고 이끌어줘야 사회적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습니다. | |||||||||||
대표님, 바쁘신데 시간 내 주시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시는 사업이 더욱 번창하고 발전하시길 기원합니다. (최 대표님은 처음에는 ‘무슨 인터뷰냐’고 완강하게 거절하셨습니다만 그래서 자활의 산 증인이신데 자활에 보탬이 되는 이야기는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설득에 끝내 응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