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홍보

‘하얀나라 출장세차’ 김명숙 대표
  • 년도2011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운영자
  • 조회수2,779

‘하얀나라 출장세차’ 대표 김명숙을 만나다.


다시찾은 행복, 자활 덕분입니다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찾아간 응급실인데 그날 전 남편과 영영 이별하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의료사료, 병원의 실수로 단지 잘못 놓은 주사 때문에.. 그 당시 저는 남은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어떡하나.. 정말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였습니다. … (중략) 누군가 자활후견기관이라는 곳이 있는데 영세민을 위한 곳이니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권유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자활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고, 세차라는 것은 남자들이나 하는 힘든 일이라 생각하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자활후견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또 한 달을 남자들을 따라다니며 출장세차 사업단 일을 열심히 해본 결과 몇 가지 확신이 저에게 왔습니다. … (중략)
- 제1집 자활성공수기 대상 ‘희망의 씨앗’ 중 일부 -


위 글은 자활 참여주민의 자활의욕 고취, 자활성공 사례를 널리 알리고자 보건복지부에서 매년 공모하는 ‘자활성공수기’ 첫 해 대상 수상자인 ‘김명숙 대표’의 수기 일부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라는 말이 있듯이, 자활현장에서 10년 동안 묵묵히 땀 흘린 김명숙 대표님에게 자활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2000년 7월 광명지역자활센터에서 자활사업에 참여한 후 3년 동안 세차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세차사업단 ‘하얀나라 출장세차’ 창업에 성공하였다. 광명지역에 김명숙 대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난 10년 동안 김 대표가 자활과 함께한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이제는 세차에서 청소 분야로 업무영역을 확대하여 누구보다 소중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Q1. ‘자활’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시나요?
A. 남편이 1996년, 그러니까 제가 43세 되었을 때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때만 해도 평범한 가정주부였는데 아이 둘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참 막막했었지요. 그러다가 가구를 파는 일을 시작하게 되어 쉬는 날도 없이 정말 열심히 일을 했었어요. 손님들에
게 싹싹하게 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출이 높아졌지만 50대가 되니 오십견도 오고 몸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요. 그래서 동
사무소에 가서 계속 일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복지관을 소개시켜 주었어요. 그 복지관에서 하고 있는 자활사업
단 여러개 중 ‘돈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봤더니 세차가 있더라고요. ‘세차’ 이건 어려운 일이니 돈이 되겠다 싶어서 선택하
게 되었죠. 2000년 7월에 시작했으니 딱 10년이 되었네요.

Q2. 처음에 공동체를 운영하실 때 상황은 어떠셨나요?
A. 처음에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죠. 먼저, 자활에서 기술을 익히긴 했지만 당장 현실에서 타 업체와 경쟁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죠.
똑같이 쓸고, 닦고, 청소하는 것보다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개인 기술자를 찾아가서 밤 12시까지 광택 등 새로
운 기술을 배워나갔지요. 그리고 공동체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아파트 곳곳에 전단지를 들고 돌아다녔어요.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은 일일이 걸어 다니면서 홍보를 했는데, 아파트에 가면 잡상인으로 쫒겨 나기도 일쑤였죠. 게다가 남의 집에서 시작을
하면서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개 기르는 더러운 곳에서 지냈었지요. 차 안에서 끼니를 때우는 날도 여럿 있었고요. 밖에서 세
차를 하다보니, 겨울에 날씨 때문에 물이 얼어버리면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했어요. 호호~ 입김도 불어가며 손도 녹였지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힘든 일들이 더 많이 떠오르는건 왜 일까요.. (웃음)
Q3.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게 되셨나요?
A. 마음가짐이 참 중요했지요. ‘하루 일당이나 받지모’ 하는 생각과 ‘무슨 일이든
내가 오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잖아요? 저는 늘 오너의 정신을
가졌어요. ‘주는 돈이나 받지 뭐’ 하는 생각은 갖지 않았어요. 어떻게 이 상황
을 헤쳐 나갈 것인가, 어떻게 고객들을 확보해 나갈 것인가 하고 늘 궁리했지
요. 당시 사무실 옆에 공장형 아파트가 있었는데 차 몇 백대가 주차되어 있었
어요. ‘그 주차된 차들을 모두 내 고객으로 확보해야 겠다’하고 마음을 먹고
난 뒤, 한명의 고객이라고 최선을 다하고 기분좋은 표정으로 다가가니 한, 두
명 고객들이 들어나다가 결국 모두가 내 고객이 되었었지요. 그때 생각하면
저녁 늦게까지 일 하느라 몸은 아프고 힘들었지만, 직원도 5~6명 정도 되고
매출도 높아 참 기분 좋게 일 했었어요.
Q4.대표님에게 자활은 어떤 의미가 있으신가요?
A. 자활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존재이지요. 처음에 먹고 살려고 했던 것이 이제는 성공을 위한 직업이 된 것 같아요. 당시 남자들
도 하기 힘들다던 제일 어려운 일인 ‘세차’를 택한 것이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어요. 청소는 어디에서나 필요하고, 깨끗하게
해 주는 것은 모두가 좋아하는 일이니 보람되고 또 기뻐요. 더군다나 지난번 자활수기를 통해 나를 나타낼 수 있던 기회를 만나
큰 성취감을 느낍니다. 자활을 만난 지난 10년 동안, 굉장히 재밌게 지냈던 것 같아요.

Q5.성공할 수 있었던, 대표님만의 노하우는 무엇이신가요?
A. 음.. 특별할 것은 없는데 ‘한 명의 고객이라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노하우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싶어요. 예전에 회사 사장님
의 차를 세차한 적이 있었어요. 차 가격이 1억 정도 되는 것이였지요. 보통 그 정도 되면 아무에게나 차 키를 그냥 막 주겠어요?
제가 잘 할 수 있다는 신뢰를 사전에 보여드리고, 싹~ 깨끗하게 닦아 주니 평생 고객이 되었지요. 그리고 ‘당당함’이 두 번째 노
하우 인 것 같아요. 내가 정당하게 벌어 먹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이겠어요? 우리는 전문 기술을 갖고 있는 전문직 이예요. 그렇
기 때문에 스스로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행동해야 해요.

Q6.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하던데,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A. 자활에서 고마운 분들을 참 많이 만났어요. 어려웠던 시절, 그 당시 애들이 초등학교, 중학교였거든요. 동사무소에 가서 수급자
로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 할 때, 담당했던 직원이 이제는 시청에 과장이 되어 자활사업을 담당하고 있는데 언젠가 우연히 만나
게 되었지요. 그 때, 직원이 저를 알아보고 “연약한 아줌마가 이렇게 성공했느냐”고 말 했었을 때 너무 반갑더라고요. 그 분 아니
였으면 자활을 통해 인연을 맺을 수도 없었을꺼예요. 그리고 5년 동안 꾸준히 세차 일을 맡겨온 판사님은 저의 성실함을 인정해
주시고 최근 교회와 등기소 청소 일을 소개해 주셨어요. 덕분에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저의 직장이 하나 더 생기게 되어 행복하답
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참 인복이 많은 것 같아요. (웃음)

Q7.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이신가요?
A. 앞으로 5년, 10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자활’로 끝을 맺고 싶어요. 기회가 있다면 제가 갖고 있는 세차나 청소관련 전문기술
을 더 많은 자활사업 참여자에게 전수해 주고 싶어요. 세차, 청소 분야는 제가 자신 있거든요~ 그리고 또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합니다.
김명숙 대표님이 처음 자활에 들어왔을 때 ‘자활을 통해 평생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요? 이제는 그 약속을 10년 동안 지켜내어 평생 직업을 찾게 되었으니 자활과 대표님은 참 오래된, 뗄레야 뗄 수 없는 벗이 인연인 것 같습니다.

대표님은 자활사업 참여 후 공동체로 나가면 모든 지원이 끊어지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앞으로 공동체 설립 후에도 일정기간은 제도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며 당부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자활과 함께 이루어 낸 시간, 앞으로는 더 소중하게 이어 나가셨으면 합니다. 바쁘신 중에서도 인터뷰를 위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취재 : 2010. 11. 26. / 한보라 (사업교육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