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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자활명장을 만나다 Ⅱ
  • 년도2011
  • 기관명한국자활복지개발원
  • 제출자운영자
  • 조회수2,562

2010년 자활명장, 김경화를 만나다.


푸른환경대구는 나의 행복, 나의 꿈


“안녕하세요~! 푸른환경대구 김경화입니다”
김경화 대표님을 찾아뵙고자 전화 드리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첫 인사가 밝고 씩씩하다. 김경화 대표님의 밝은 목소리와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흔쾌히 내 주시겠다는 적극적인 모습에 만나 뵙기도 전에 참 좋은 분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 대구역을 거쳐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고 나서야‘남구지역자활센터’를 찾았다.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센터장님과 직원, 김경화 대표님을 보며 남구지역자활센터만의 에너지를 가득 느낄 수 있었다.
김경화 대표님이 1999년 4월 대구남구지역자활센터과 인연을 맺은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처음 자활센터에 들어올 때는 평범한 아줌마였지만 이제는 직원 85명과 함께 학교를 상대로 전문 청소용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김 대표님의 성실함과 직원들 간의 두터운 신뢰는 1999년 9월 청소자활공동체 발대, 2002년 3월 푸른환경대구 대표, 2006년 10월 청소공동체 창업을 가능하게 했다.
Q1. 어떻게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었나요?
A. 약 15년 전, 저는 1남 6녀를 둔 평범한 아주메였지예. 하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인생의 고비를 만나게 되면서 참 먹고 살기
가 어려워지게 되었지예.
우연히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준다’는 신문을 보고 남구지역자활센터를 찾아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더.
그 때, 가난은 나한테 끝내고 자식들에게 되물림하지 말자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 4시간 이상을 자 본적이 없어예. 초 저녁에는
포장마차에서 알바를 하고, 새벽에는 눈을 붙인 동, 만동 하면서 차를 세차하러 나섰지예. 그 당시 차 한 대를 세차하면 천원이
쥐어졌는데 4~5대를 해서 5천원을 받았지예. 그 이후에 남구지역자활센터에 가서 다양한 교육도 받고, 기술도 배우게 되면서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더.


Q2. 김경화 대표님의 하루일과는 어떠한가요?
A. 저는 매일 저녁 12시쯤에 자고,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납니더.
왜 많이 안 자는가 하면, 시간이 참 아깝고 세월이 참 아깝더라고요.
밥 먹고 사무실에 와서 아침에 사람들 배치해 놓고, 현장에 가서 일을 합니더. 그리고 퇴근 전 직원들이 한 일들을 꼼꼼히 점검
하는 걸로 마무리 합니더. 돈을 10원이라도 받은 게 있다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처리를 완벽하게 해야 밤에 잠이 옵니더.
그렇기 때문에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도 꼼꼼하게 확인해 보지예. 약속한 날짜에 제 때 하지 못하면 밤 10시까지라도 다 하
고 가는 스타일이라 밤 늦게까지 작업할 때도 있습니더.

Q3. 최근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A. 기억에 남는 일들은 많지만, 최근에는 대구여고에서 일했던 게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복도와 계단청소 일만 맡게 되었는데 나중
에는 유리창 업무까지 담당하게 되었지예. 또 청소라는게 대목을 타는 편이라 지난 추석에 다른 청소용역 업체를 보니 다 놀던
데, 우리는 추석 3일을 안 놀고 일을 했습니더. 저는 일이 많을 때가 제일 즐겁고 행복합니더.


Q4. 대표로 활동하시기에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A. 처음에는 경영경험이 없어서 두려움도 있었지만, 대구에서 최고의 청소용역업체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
줌마인데도 교장선생님들하고 어울리는게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더. 비수기인 방학 때는 무료로 학교 화장실 청소를 해 주는 등
서비스를 해 주면서 한번 맡은 일은 끝까지 최선을 다합니더. 또한 저는 자활에서 제일 안 되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내 사람으로
만들어 놓습니더. 화투도 치지 마라, 술도 먹지 마라, 남자가 나이 들어서 돈 없으면 고생하니까 돈 벌어서 모아라. 참 많이 이야
기 하지예. 처음에는 그런 소리 하면 기분좋지 않게 받아들이지만 내가 내 동생같이 생각해서 이야기 하다보면 모두 다 이해하
더라고예. 아직까진 마, 한 명도 내친 사람 없습니더. 사람으로 만드는게 대표 역할 중 하나이지 않겠습니꺼. 참 재밌고 행복한
일들이 많습니더.
Q5. 삶의 신조는 무엇인가요?
A. 항상 꼼꼼하게 챙기는 것이 저의 노하우이고 신조 입니더. 학교 하나를
맡으면 그 것을 시작으로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지예. 누가 저보
고 그러더라고요. 꽉 물고 안 놓는 스타일이라고요~ (웃음)
그리고 제 월급은 제일 나중에 받는 편입니더. 왜 그런가 하면, 직원분들
은 월급 바라보며 사는 분인데 내 월급 먼저 챙길 수는 없는거잖아요. 월
급 줄 돈이 모자르면 하루, 이틀 더 벌어가 제가 가져갈 월급이 생기면 그
거 가지고 가요. 아는 분도, 모르는 분도 있을텐데..
대표라면 직원 먼저 생각 하는게 맞는거지예.
Q6.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A. 평소 교육에서도 이야기 하지만,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분들 모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더. 자활센터에 오면 여
러 기술도 알려주지요, 기계도 사 주지요, 공동체로 활동도 하게 해 주지요, 촌에서 자란 이 아주메도 자활명장 상 받는데.. 와
성공을 못 하겠습니꺼. 항상 마음을 좋게 써야 뒷 끝이 없는 것입니더. 무엇이든 반드시 나한테 돌아오는 것을 실감 했었지예.

Q7. 김경화 대표님에게 ‘푸른환경 대구’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다른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자활에 와서 이렇게 일할 수 있다는게 정말 즐겁습니더. 제가 열심히 일하는 것
은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늘 이야기 하고 다닐 정도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
합니더. 예전 고생했을 때 ‘내가 조금 더 생활이 나아진다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이 딱 그
때인 것 같습니더. 수급자 들이 취직할 때가 없으면 제가 다 취직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먹고 살게 해주지요. 그리고 길 가다가
정말 어려운 분 만나면 짜장면 한 그릇이라도 사드릴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저는 참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푸른환경 대구를 키우
면서 계속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더.


Q8. 자활명장이 되기까지 가장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있다면?
A. 열심히 함께 해준 직원들에게도 감사하지만, 처음 자활에 들어왔을 때는 과장님이셨지만 지금은 센터장님 이신 ‘전태수’ 센터장
님께 제일 감사드리며, 눈 감는 순간까지도 못 잊을 것 같습니더. 어려웠을 때 가장 많이 도와주셨고 내하고 같이 정말 열심히
뛰면서 일했거든요. 그래서 센터장님 생각을 하면 항상 가슴이 뿌듯하고 항상 고맙지요.


Q9.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A. 앞으로 몸이 좀 나아진다면 푸른환경대구를 조금 더 키워서 최고의 청소용역업체로 만들어 자활 후배들한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노인, 장애인 분들과 저소득층과 함께 더불어 잘 살아가고 싶습니더. 또한 건강해져서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더 남을 위해 희
생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은게 나의 꿈 입니더.


인터뷰가 끝난 후 김경화 대표님이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전태수 센터장님과 기념사진을 찍어드렸다.
활짝 웃으시는 두 분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닮은 것 같다.

김경화 대표님은 2009년 위암 수술을 받은 후 나무의 이파리 하나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선생님, 인생 살다보니 참 별 것 아니데요. 세월이 눈 한번 감았다 뜨니 60이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 배려하며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그 세월들이 참 알차게 느껴지네요.. ”

푸른환경대구를 최고의 청소용역업체로 만들고 싶은 김경화 대표님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바쁘신 중에서도 인터뷰를 위해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




◇취재 : 2010. 11. 19. / 한보라 (사업교육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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