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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 돌아왔다
  • 년도2018
  • 기관명광주북구일터지역자활센터
  • 제출자윤원창
  • 조회수611

‘윤원창공인중개사무소’

  이 간판을 보면서 나는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저 간판 속의 ‘윤원창’이라는 이름은 바로 나입니다. 사업 실패와 이혼을 겪으면서 저 간판 속에 있는 내 이름 석 자를 새기기까지 나를 일으켜 준 것은 아버지로서의 자존심이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었던 지난 20여 년간의 슈퍼맨 일기를 감히 꺼내 봅니다.

  대기업을 잘 다니던 내가 사표를 써야 했던 건 우리나라가 IMF를 겪던 1997년의 일입니다. 대기업에 근무하다 IMF로 인해 저는 개인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사표를 쓰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일반적인 회사 생활을 하던 나는 낯선 환경과 치열한 생존경쟁의 세상을 잘 몰랐습니다. 조그마한 음식점을 개업한 후 몇 개월 만에 뜻하지 않는 화재가 일어나고, 화재로 인한 주변 상가의 금전적・정신적 피해까지 보상해야 했습니다.

 

  경제적 위기는 가정의 위기까지 불러왔습니다. 빚에서 이혼까지, 나는 하루하루 피폐한 삶을 살아가면서 ‘왜, 어떻게, 내 삶이 이렇게 됐을까,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하는 자괴감으로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습니다.

 

  이혼 후 내게 남겨진 것은 빚과 피폐해진 삶, 그리고 두 아들.

  ‘오늘은? 내일은? 어떻게 살까.’ 미래는 전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데 하루하루를 어떻게 먹고살 것이며, 어린 아들들을 어떻게 지켜 낼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고 싶은 막연한 생각만이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동 주민 센터를 찾아가면 어려움 환경에 있는 주민들을 위한 혜택이 있다는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민 센터를 찾아갔습니다.

 

  부양가족, 재산 현황을 적고 나니 현재까지 내가 살아왔던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살고 싶었던 인생과 현재의 상황이 맞지 않아 너무 애처롭고 창피해 보습니다. 주민 센터에서 그냥 필요 없다고 포기하고 나와서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혼자만의 생활을 하면서 술에 의지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니 어느덧 나는 술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던 중, 어느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습니다.

 

  술병과 피폐해진 얼굴이 두 아들이 보고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그런 내 인생의 목표와 정반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주민 센터를 방문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주민 센터를 방문해 지원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복지 사안을 안내받았습니다. 주민 센터 직원의 도움으로 조건부 수급자로 등록되어 우선 주거가 안정되고, 의료 지원, 그리고 제일 중요한 우리 두 아들을 위한 교육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두 아들의 교육에 전념하고 보니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생활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힘이 생겼습니다.

 

  이후 차츰차츰 주민 센터 및 구청에서 알려주는 각종 교육에 참여하면서 삶의 희망이 생겼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니 ‘지금 이대로 인생을 마무리할 것인가’, ‘내가 원하는 꿈은, 인생은 무엇인가’, ‘내가 없으면 우리 아들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런 근본적인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고,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자격증을 준비해서 취득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을 계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턱대고 시험 준비에 매달리려고 하니 생활비 등 현실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의지보다, 현실의 벽은 높고 또 높았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다시 포기하는 아버지, 무책임한 아버지가 되기 싫었습니다. 일용직으로 낮에는 일을 하면서 저녁에는 아이들 육아, 밤에는 공부하며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했습니다. 시험에 낙방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내년 시험을 준비하며 진념으로 도전하고 또 도전했습니다.

 

  막상 자격증을 따더라도 어떻게 공인중개사로 일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많아 취업이 쉽지 않고 공인중개소를 창업하기에는 자본이 없다는 의문이 들었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이 맞는 것 같습니다.

 

  때마침 주민 센터와 자활센터에서 자산 형성 사업인 ‘희망키움통장 I’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막연하지만 희망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희망키움통장 I’ 만기 해지 시 주어지는 여러 가지 혜택으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면 나의 꿈을 키울 수 있으리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2014년 6월 희망키움통장 I에 가입했습니다.

 

  2014년 겨울 무렵, 나는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희망키움통장에 적금을 붓고 아이들을 기르느라 지치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안 하던 공부도 힘들었지만 생활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의 학업과 대학교 입학금 등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와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한 번 잡은 희망이라는 불빛을 중간에 포기할 수도 놓칠 수도 없었습니다. 또 포기하는 아버지가 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참고 견디며 끝까지 계속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희망키움통장 I의 만기 시점을 앞두고,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처럼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정말이지 합격했을 때 ‘이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험난하고 힘들었던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희망키움통장 I에 가입하고 있던 중에 대출을 받아 제 이름을 딴 ‘윤원창공인중개사무소’를 개업하고, 탈수급을 하여 희망키움통장 I 만기 조건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희망키움통장 I에 가입해 저축을 하면서 참고 노력하면 되었던 것처럼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실하게 관련 교육에 참여하고, 어렵고 궁금한 점이 있을 경우 광주 북구 일터 지역자활센터에 문의해 자문을 구하고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금년 2017년 6월 희망키움통장 만기 수령을 했습니다.

    

 

2014년 6월 ~ 2017년 6월, 3년의 시간

  모든 걸 포기해 버렸던 긴 터널을 지나 희망키움통장 I을 통해 희망의 빛을 포기하지 않았던 값진 시간입니다. 만기 해지로 받을 수 있었던 적립금뿐만 아니라,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순간들과 포기하지 않았던 나에 대한 보상이었으며,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지킬 수 있는 뜻깊고 감개무량한 크나큰 보상이었습니다.

 

  그 벅찬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뻤습니다. 이렇게 받은 적립금을 창업 자금으로 활용했고 현재는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힘든 상황을 잘 견디며 자라 준 우리 아이들도 각자의 제 삶을 찾아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 또한 앞으로 아이들에게 슈퍼맨 같은 아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슈퍼맨으로 살고자 합니다.

 

  사실 이 글을 쓸려고 할 때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나의 이야기가 현재 포기와 실패로 힘들어 하는 다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포기하려고 할 때 도움을 주신 분들과 3년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면 긴, 희망키움통장 I 가입 기간 동안 포기 하지 않고 저를 응원하고 지원해 주신 광주 북구 일터 지역자활센터와 주민 센터 직원 분들에게 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요즘 나오는 광고 문구가 마음에 와 닿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진정한 후원은 후원이 끝나게 해주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